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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노란고무장화

장삼이사

by 실암 2006. 8. 2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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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가는길.

아스팔트가 녹아 화물차의 바퀴자욱을 깊게 음각 할 정도다.

길 옆의 개망초도 시들다 못해 말라 비틀어 졌다. 7월 한 달 동안 장마와 물폭탄으로

애간장을 태우더니, 8월들어서는 폭염의 연속이다.

매년 8월15일에 열리던 초등학교 총동창회체육대회가 올해는 이틀 앞당겨

일요일인 13일에 열렸다. 아버지부터 형과 아우와 누이, 그리고 내가 나고 자란 마을 친구와

선후배, 6년이란 세월의 사계절을 하루같이 동고동락한 동기들이 함께 모이는 총동창회 자리.

꼬깃꼬깃 가슴 깊숙히 자리한 생각을 들쳐내고, 코흘리게 동심의 시절을 오롯이 되살려 주는

자리이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이유다. 총동창회 전날 저녁은 더 달뜬다.

전야제라는 이름으로 동기들끼리 따로 자리를 마련 밤새 지난세월을 곱씹으며

지지고 볶는 '야단법석'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일찍 점심을 먹고 나섰다. 부산에서 고향(경북상주이안)까지는

승용차로 230여Km, 3시간이면 족하다.

이글거리는 너울이 눈에 보이는 뜨거운 고속도로를 승용차는 거침없이 달린다.

3단 에어컨을 넣어도 차안은 열기가 묻어난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오후 6시가 가까웠다. 차에서 내리니 한증막이 따로없다.

마당 한가운데는 서울사는 동생의 차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벌써 왔어" 하며 들어서니 제수씨 혼자서 우리부부를 반긴다.

동생은 오는길에 시내에 내리고 혼자 시집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놈이 부모보다 친구가 더 좋나, 집부터 안 들리고…?" 그렇지만 어쩌랴 친구가 좋은 걸!


부모님은 이 더위에 논에 약치러 나가셨단다.

선풍기가 있어도 더운 바람만 훅훅 내뱉는 통에 밖으로 나왔다.

자동차 범퍼엔 온통 가미가제처럼 육탄으로 부딪쳐 죽은 날벌래들의 전쟁터 같다.

대문까지 자동차 머리를 들이대 놓고 수돗물을 시원히 뿌려준다.

그때 털털털털…, 작은아버지가 모는 경운기가 골목을 들어선다.

경운기가 마당에 들어올수 있도록 급히 차를 뺐다.

 

아버지와 어머니 작은어머니가 경운기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오시는데

네분 노인들의 모습이 눈물이 날 지경이다.

허드레 작업복에 둘러 쓴 수건,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는 노란고무장화를 신으셨는데

키의 절반이나 차지하고 헐렁하다.

농촌도 요즘은 논에 들어갈 땐 고무장화를 싣는다.

아버지 형제들은 할머니를 닮으셔서 모두 키가 작은 편이다.

고무장화는 보통사람의 경우 무릎까지 오는게 상식인데

이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신은 장화는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까지 올라가

다리전체를 감싸는 형색이다.

원래 작은키에다 일흔을 넘기신 연세에 늙고 살이 없다 보니 허리도 굽고

키는 더 작아지신것 같다.

어머니도 몸빼차림에 수건을 둘러썼지만 땀과 농약과 흙탕물로 후줄근한 모습인데

땀을 많이 흘리셔서 그런지 얼굴이 울퉁불퉁 부어오른 모습이다.

어제는 작은집 논에 약을 치고 오늘은 우리논에 함께 치셨단다.

 

 "아이구, 아부지 이 더위에 농약을 어떻게 치세요? 큰 일 날라고…" 걱정스레 인사를 드리니,

 "괘안타, 어지보단 마이 시원해 졌다. 이제 막 잎사구(나락이)가 올라 오는데

이때 안치면 안된다." 하신다. 요즘 농사일도 왠만큼 기계화가 되었지만

농약치는 것 만큼은 농가마다 직접 해야 하는 현실이다.
두 분 형제는 논 속에서 두 분 동서는 논둑에서 경운기와 연결된 긴줄을 잡고

뙈약볕 논배미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셨으리라.

쇄약해진 몸이라 온몸이 안 아프신곳이 없어 자식된 도리로 걱정을 하지만

한평생을 땅만 파먹고 살아오신 분들이라 아랑곳 하지 않는다.

당신들의 편안한 육신보다는 항상 자식걱정이 앞서는 것이 우리네 부모님들이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고 작은아버지 내외분은 집으로 가셨다.

 

아버지는 뒷밭의 고추가 병이 들어 걱정이라며,

손에 약묻힌 김에 마져 쳐야 된다고 손수 경운기를 끌고 밭으로 나가신다.

몇몇친구가 읍내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바리바리 오지만

그냥 돌아서 나올 수 없어서 경운기 뒤를 따라 나섰다.

농약냄새와 땀냄새가 풀풀나는 부모님과의 짧은 시간이 아직도 가슴속에 짠하다.

 

노란고무장화를 신고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 모습에서 뒤뚱거리며 아버지의 검정장화를

신고 골목을 누비던 철부지 꼬마아이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왜일까?

그날 저녁 친구들과 희희락락하며 밤을 하얗게 새우면서 낮의 일은 까맣게 잊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농약과 땀에 불은 주름진 손 한번 잡아 드리지 못하고 내려온

부모님 생각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우째던동 건강하시기만을 빈다.(*)

 

 

>>고향의 옥수수와 참깨꽃/2006.08.12

 

 

 

>>고향가는 길 경부고속국도 동대구톨게이트와 금호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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