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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入隊)

장삼이사

by 실암 2006. 12. 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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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1978년 5월 18일
아카시아꽃 향기가 진동하는 상주읍 한 초등학교의
집결지에서 곱게 기른 내 장발머리가 순식간
중학생 머리로 변했다. 마음이 아린다.
그토록 삼엄한 장발단속도 잘도 피해 갔건만
무작빼기 바리깡 앞에선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다.

 

입영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서 어머니는
"우예든동 건강하게 댕기 온네이∼ 어이"
혹여 부실한 아들(?)이 군생활은 잘 견뎌낼까

또 되돌아 오지나 않을런지!(*)
아들의 손을 잡고 노심초사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2열 종대의 긴 장정의 행렬이 지나가는
긴 골목길은 마치 갑작스런 소나기 뒤의 물고랑처럼
한바탕 소용돌이를 친다.
상주역에 대기한  입영열차에 올라타자
내 어머니와 수많은 환송인들은
플랫폼에서 발만 동동거리고 있다.

 

그 짧은 시간이 어쩐지 지루하게 느껴진다.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보기가 송구스럽다.
이윽고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장정들의 시선따라 환송인도 같이 앞으로 내 달린다.
손을 흔들며 달려오던 사람들이 멀찍이 멀어질 쯤
헌병들이 앞뒤칸에서 매몰차게 달려 온다.

 

'모두 대가리 박아'
'고개 들지마, 고개 든 놈 누구야'
갑자기 180도 달라진 열차안의 분위기와 처음격는 살벌함
모두들 겁을 잔뜩 먹고 창 밖도 내다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옴짝달싹 못하는 공포속에서
왠종일 달려 도착한 곳이 논산 연무역이었다.
줄줄이 굴비 엮이듯 이끌려 그렇게
논산훈련소로 걸어갔다.

 

1979년 10월 18일 휴가중에 격은 부마항쟁과 계엄령
곧이어 10월26일 박정희대통령 서거의 슬픔
12.12 사태의 혼란과 불안
1980년 5월의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역정이
내 군대생활 기간 중 일어난 사건들이다.
오늘 아침, 무명(無明)의 안개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기차처럼
33개월10일의 군생활이 뇌리에 일순 떠오른다.
참으로 혹독하고 고통의 연속인 나의 군대생활이었다.

 

(* 사실 육군에 입대하기전 공군에 지원하여 합격, 교육대에 입소하였으나

    1주일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퇴소당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었다.)

 

    <작년 8월 문경새재 가족여행중에서, 가족사진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셀프타이머로 놓고 달려가는 중, 그런 내 모습을 찍고 있는 큰 아들,

      바닥이 어찌나 미끄럽던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늘, 2006년 12월 7일 13:00
막내 아들이 자신이 나고 자란 부산의 00사단으로 걸어서 입대했다.
머리깍은 모습이 쑥스럽다고 군대 들어가서 깍는다며 덥수룩한 모습으로.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비와 찐한 포옹으로 서로 어께를 두드려 주고
씩씩하게 웃으며 배웅을 한다.
12시, 이제 부대로 들어간다고 제 형의 휴대폰으로 인사를 한다.
"그래, 이제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군인이 되는구나.
한결 늠늠하고 정신과 몸이 더 강건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우리 가족은 고난의 땀방울이 맺혀있을 널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그것까지 즐기라'는 말처럼
고통스런 순간이 오더라도 피하지 말고 인내하고
차라리 즐기겠다는 의지로 극복하기 바란다.
그런 너를 위해 기도하마.
너와 모든 훈련병들의 앞길에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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