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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 생가

장삼이사

by 실암 2006. 11. 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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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생가 안내 리플렛 표지> 

 

이 집은 대한민국 제5대에서 9대까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1917∼1979)가 태어나서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생가내에는 안채 및 사랑채와 1979년에 설치한 분향소가 있다.
건립당시 안채는 초가였으나 1946년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은 고령박씨 29세손으로 그의 선조는 성주에서 약목으로 이거하였다가

1916년 현 위치인 상모동으로 이사하였다.

 

^^건립당시의 초가(오른쪽)와 개조된 현재의 생가 모습

 

^^분향소 모습 

 

박정희대통령은 구미보통학교와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 보통학교 교사를 지낸 후,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군 주요 지휘관을 역임하고 1961년 5.16군사혁명을 주도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되었다.
1963년 육군대장으로 예편, 1963년 제5대부터 1979년 제9대 대통령을 역임하는 동안

조국근대화의 기수로서 가난을 물리치고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의 터전을 닦았다.
새마을운동을 통한 국민정신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겨레의 염원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민족중흥을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1979년 10월 26일 향년 61세로 서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929년 박대통령이 모친과 함께 심은 감나무.

 

 

박정희대통령이 1977년 9월 5일 금오산에 들렀을 때 일이다.
금오산 중턱 대혜폭포에서 주변계곡에 깨진 병조각과 휴지 등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자, 우리 청소부터 하지"하면서 쓰레기와 오물을 주운 후, 자연보호를 강조하여 그 이듬해인

1978년 10월 5일에 자연보호헌장을 선포했다.

 

 

 

 

건국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지칭되던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내노라하는 건설관계자와 야당의원,

경제학자 등 대부분이 불가능하다고 반대를 하였다.
당시 박대통령은 "하면된다"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글/박정희생가 안내 리플렛에서 옮김>

 

^^분향소 마당에 박대통령의 삶과 업적을 흑백사진으로 보여준다. 아래사진들은 위의 게시판을 촬영 

 

 

 

 

 

.........................

*지난 11월 11일(토) 구미 금오산에서 초등학교 동기회가 열리는 틈을 이용, 박대통령생가를 찾았다.

  생가 방문은 처음은 아니어서 생소하진 않았지만, 10여년 전보다 공원화 사업을 많이 하여 주변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시대촌, 내자의공원, 옥외광장 등이 새로 들어서 관광객이 많이 다녀가는 듯 했다.

  군생활을 수도경비사령부(지금은 수방사)에서 근무한 탓에 나는 대통령(박정희대통령뿐아니라)에

  대한 감회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동 시대를 군에서 근무했다면 다 같은 기억이 있으리라.

  1979년 10월 26일 저녁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말단 소총수 였지만 그 충격은 엄청 컸다.

  시시때때로 엄습해오는 불안초조..., 이어지는 12.12사태와 80년 5.18의 혼란과 비극...,

  1981년 첫 달력을 때면서 제대했다. 기쁘고 또 기뻤다.

 

  이 시대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리나라가 이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했다는 것은 누구라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장기집권과 여러가지 애통한 일들도 있지만 위대한 지도자인 것은 분명하다.

  비명에 가신 두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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