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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네!

장삼이사

by 실암 2015. 10. 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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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흑백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한 공방에서 스님을 만났다.

당시 흑백사진에 심취해 있었는데, 스님도 바랑에서 흑백 필름을 몇 통씩 꺼내 현상을 맡기곤 했다.

나는 산복도로 골목 사진을 찍었었고, 스님은 시골 버스를 타고 다니며 할머니들을 찍고 있었다.

'밀착 프린트'한 작은 사진을 깊게 들여다보던 스님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표정 같이 맑았다.

하얀 치아를 들어내 웃으면서 찍어 온 사진을 보여 주며 어린아이 처럼 자랑을 하곤 했었다.

 

가끔 그렇게 만나 알고 지내던 스님이었다.

산사에서 늘 저만큼 거리감 있게 만나던 스님을 좁은 공간에서 이마를 맞대고 보는 이상한(?) 스님이었다.

나이는 물론 어디에 주석하는지, 어떤 종단에 소속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법명이 '법일'이라는 것만 알고 지냈다.

자신에 대해 알려 주지도 않았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스님 또한 나를 처사(불교에서 남자 신도를 이르는 말)라 부르지 않고 이무현씨라 불렀다.

단지 스님과 중생이 우연히 만나 사진을 좋아하는 도반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득 다가온 스님과의 인연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어느 날 끝이 났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되면서 나는 흑백필름 사진을 하지 않았고, 그 공방에도 갈 일이 없었다.

그 후에도 스님은 한동안 드나들었는데 그 역시 오래전에 발길을 끊었다고 들었다.

 

스님을 다시 만난 건 2012년 가을이었다.

짙은 안개가 새벽 소나무 숲을 적막하고 신비롭게 그려내던 날이었다.

지척의 소나무가 안개 속에서 아득히 멀어졌다가 다시 다가 오곤 했다.

그 속에 한 스님이 있었다. 솔숲과 스님은 한 폭의 수묵화 같았다.

그의 뒷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법일스님 이었다.

그날 잠깐 안부만 묻고 우리는 안개 숲에 정신이 팔려 헤어졌다.

그는 경주 남산 아래에다 작은 절을 짓고 주석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일요일 경주 남산 늠비봉 석탑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스님의 암자를 찾아갔다.

스님의 암자는 남산아래 한 마을의 좁은 길이 끝나는 산기슭에 있었다.

암자엔 아무도 없었다. 마당에서 잠시 서성거리는데 보살님이 마을에서 올라왔다.

'법일스님 절이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스님은 안계셨다. 어디 출사라도 가셨나 했는데, 머뭇거리던 보살님은 스님께서 돌아가셨단다.

1주기가 돌아온다고 했다. 나 보다 젊고 건강한 분이셨는데 믿기지 않았다.

그날도 촬영을 다녀 온 후 방안에 앉은 채로 입적을 했다고 했다.

'아, 내가 너무 늦게 왔구나!

지난해 펴낸 나의 졸저 '구름하나 바람소리' 사진집을 스님의 영전사진 앞에 올리고 삼배를 했다.

스님은 차잔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유품을 정리를 하는데 사진 외에는 별로 정리 할 게 없었다고 했다.

다만 카메라와 필름이 몇 박스 나왔다고 했다.

스님이라 욕심을 내려놓았겠지만 이처럼 사진에 대한 욕심은 많았다.

그의 바랑에는 생필품 보다는 언제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그는 주로 농어촌의 할머니를 담았는데, 최근엔 남산의 소나무를 즐겨 담았다고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끔 시절 인연으로 만나던 스님, 결국 암자로 찾아가니 아주 멀리 떠나고 없었다.

함께 할 때마다 좋았던 우연, 그 우연은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가슴에 작은 탑으로 남았다.

"스님,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아름다운 세상 만나십시오

흙과 물과 빛 그리고 바람(지수화풍)의 인연으로 만나길 바랍니다."

부디 극락왕생 하시길 기원합니다. ()()().




    <2012년 9월 마지막으로 본 경주 삼릉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 법일 스님>




2015.  10.  11.  경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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