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흰구름 머무는 백운암이 떠올랐다.
통도사 부속암자 20여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백운암.
영축산 함박재 아래 해발 700미터, 웬만한 산의 높이에 자리한다.
경사진 비탈길을 숨이 턱에 닿도록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곳.
극락암 주차장에서 쉼 없이 1시간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길이다.
노 보살님도 기어코 오르는 길, 신심이 이처럼 구름위의 암자로 이끄나 보다.
연등과 주련(柱聯)이 걸려 있는 이 길,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오르라는 스님의 배려 같아 경구(警句)를 새겨 본다.
백운암 가는 길은 외롭지 않다.
봄 여름 가을, 재잘대는 새소리, 청아한 물소리 바람소리 즐겁고,
겨울, 바스락 나뭇잎 부서지는 소리, 코끝 알싸한 바람소리 흥겹다.
또 하나 은은한 목탁소리,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것이 없다.
흰구름(白雲) 위에 앉으니 신선인가 싶은데
오늘은 한 마리 새가 되어 훠이훠이 날고 싶다.
통도사 암자인 극락암에 주차 후 쉬엄쉬엄 걸어간다.
암자 뒤로 멀리 시살등 함박재 함박등 영축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용비늘 같은 능선이 펼쳐져 있다.
극락암을 나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다.
비로암까지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백운암은 그 반대편으로 조금 오르면 임도가 끝난다.
임도를 벗어나면 한동안 된비알 흙길이다. 한줌 땀을 쏟으면 다소 평길이 나타난다.
染淨不二
본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거늘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랴
숨가쁘게 한참을 오르면 돌무더기로 된 너덜겅이 나오는데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자리다.
貪愛重罪 今日懺悔
그동안 애착과 탐욕으로 지은 죄 나 오늘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흙 한줌없는 너덜겅에서 살아가는 노거수, 비탈의 돌들을 끌어 않고 살아간다.
明日無盡 作善日少
내일도 있지만 지나온 세월 뒤돌아보면 부끄럽다. 선업은 적고 악업은 많으니...
百年貪物 日朝塵
백년을 욕심으로 모은 재산 하루아침 먼지처럼 나라가네
백운암이 가까워 오면 산길을 따라 연등과 주련이 걸려 있다.
주련의 경구들이 눈에 들어와 절로 발길이 멎는다. 덕분에 쉬어 간다. 여기 소개하는 경구들은 모두 산길에서 발췌한 것이다.
白雲流水 千年琴
백운계곡 끊임없이 흐르는 물 변함없는 천년의 가야금 소리
蛇飮水成水 牛飮水成乳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된다.
是故破戒 爲他福田
경거망동으로 계를 가벼이 여기면 어찌 다른 사람을 위하고 복을 짓겠는가
空腹高心 如餓虎
속에 들은게 없고 자존심만 강한자 성질못된 배고픈 호랑이 같다.
蛾子拍燈火
불나비야 등불을 꽃으로 착각하지 마라 결국 불꽃을 탐내다 네 목숨을 잃는다.
是則名爲 眞懺悔
허공처럼 텅빈 마음 이것을 이름하여 한점 부끄럼 없는 참회라 하네.
三日修心 千載寶
삼일동안 수행하는 이 마음 천년의 보물과 재산을 얻음이오.
백운암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한켠에 쌓여 있다.
바람은 차지만 양지는 봄처럼 아지랑이가 보일 것 같다.
下心
나를 낮추어 상대를 이해합시다.
법당 뒤에 있는 소박한 장독대
국수가 점심공양으로 나왔다. 한겨울엔 모든 물이 얼어 음식도 얼음을 녹여 짓는다고 한다.
휴일이라 방문객과 등산객이 많은 날은 설거지할 물을 아끼기 위해 국수를 내 놓는 다고....
점심공양 후 함박재로 향했다. 그러나 함박재 가까이에 접근하면서 등산로는 눈이 많다.
장비도 없고 더 이상 오르면 내려 오기 힘들 것 같아 하산했다.
하산하면서 바라본 함박등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백운암에서 함박재로 오르는 입구에 있는 소나무의 이채로운 모습이 눈길을 끈다.
4개의 가지가 하나로 합쳐져 다시 3개의 가지로 나눠졌다.
극락암 무지개 다리에서 바라본 영축산. 구름은 쉼없이 영축산을 휘감아 돌아 나온다.
2011. 2. 20. 영축산 백운암에서
'새야새야 방울새야' (0) | 2011.03.08 |
---|---|
영도다리 해체 복원 현장을 가보니... (0) | 2011.02.26 |
`겨울 진객` 홍여새를 만나다. (0) | 2011.02.19 |
설경의 대능원 (0) | 2011.02.15 |
`눈폭탄` 부산, 대설주의보 속의 산복도로에 나가 봤더니... (0) | 2011.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