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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靈鷲山)인가, 영축산인가!

구름하나 바람소리

by 실암 2010. 3. 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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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이 끌리는가, 산을 사모하는가! 우리는 왜 산으로 가는가?
산이 어디 오라하던가! 산에 들면 절로 선해지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오만 잡동사니 생각과 걱정으로 얼굴 펼 시간조차 없는 일상을 잠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폐부 깊숙이 들어오는 맑은 공기, 제 자리를 지키고 선 나무와 풀에서 느끼는 경외심, 산에서 만나는 결 고운 벗님들, 숨찬 만큼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산행, 오늘도 일상의 우울한 찌꺼기를 버리고 온다. 온갖 투정과 허튼 언행도 오롯이 받아주는 산이 고맙다. 그래서 어머니와 같은

산을 일생 사모하며 살아간다.전날 천성산에서 팔을 삐는 작은 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또 다시 산에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모처럼 봄 햇살이 머리위에서 하늘거리고 알싸한 봄바람이 콧잔등을 스치고 지나간다. 길지 않은 산행 여정, 오늘은 봄 소풍에 따로 없다.
3월 한 달 내내 이어지는 비와 눈과 황사를 동반한 꽃샘추위에도 계절의 변화는 이길 수 없는 듯 영취산은 봄 색으로 가득했다.

마른 나뭇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가지 끝마다 푸른 움이 부풀어 있다. 진달래와 생강나무, 오리나무, 낮은 자리엔 사초류와 노루귀와 제비꽃도

반기고, 동내어귀엔 냉이와 별꽃과 개불알꽃도 지천이다. 쑥은 게릴라처럼 뜯고 뜯어도 밀고 올라오고, 오늘은 시간도 넉넉해서 더러는 나물

뜯는 아낙으로 변하기도 한다. 내일 아침은 제철 도다리 쑥국이 올라오지는 않을까!

 

사리마을 법성사를 출발하여 마을을 벗어나면 이어지는 부드러운 흙길과 소나무 터널길이 반긴다. 이어지는 된비알, 30여분 한 순배 땀을 빼면

영취산 아홉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먼 산은 푸른 용 비늘처럼 신령스러운데 눈 아래는 허연 산의 속살이 드러나 있고 나무의 주검이 이리저리

흉물스럽다. 8년 전 산불로 인하여 불탄 나무를 잘라 눕혀 놓았는데 안타까운 모습이다.

산행 중반부터 이어지는 암릉 구간은 바윗길을 헤쳐 나가야 하는 얕잡아 볼 수 없는 구간이다.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바위가 엉키고

바위사이에 자라는 강인한 소나무 또한 일품이다. 암릉이지만 오금이 저릴 정도는 아니고 오르내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렇다고 마음편이 내

려설 수 없는 구간도 많다. 영취산 괜한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 아니다. 

 

정상(681.5m)에 서면 좌우로 펼쳐진 산군의 무리가 시원하다. 낙남정맥의 줄기가 눈 아래 펼쳐지지만 그 산구비가 어디서어디로 흘러가는지 가늠

할 길이 없어 아쉽다.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마지막으로 설법을 한 인도의 영취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는데 영취산의 불교식 이름이 영축산이라고 한다. 이곳의 사찰

에서도 영취산과 영축산을 혼용하고 있었다. 통도사가 자리한 영축산의 유래도 이와 같다.

정상에서 예정 코스를 이탈하여 산 정상 아래에 있는 절집을 들렀다. 부처님 법을 위해 일 배, 선한 마음을 채우겠다고 일 배, 먼저가신 님 들

을 위해 일 배, 삼배를 올렸다. 서해에서 일어난 주말 참사가 산행 내내 마음 한자리를 우울하게 했다. 사람사는 세상에 곤란함과 험한 일이

없을까마는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이 없는 자신의 지은 복대로 천수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산하며 분홍노루귀를 만났다. 장터에서 죽마고우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반가웠다. 덕분에 짧은 산행으로 무료하게 기다리는 수고를 즐겁게

해줬다.오늘은 마침 산신제까지 지내고 나니 돌아오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이 더욱 평온해 보인다.
언제쯤일까, 불탄 자리의 벌건 속살이 아문 뒤 다시 오를 그날은?

 

 

사리마을, 법성사에서 출발~

 

 

20여분 오름길의 묘지 주변에 '나도 꽃이여, 한 번 봐 주셔!' 하는 듯... 봉분에 핀 그늘사초 무리. 

 

 

영취산 정상을 아우르는 아홉봉우리가 용위 비늘처럼 신령스럽다. 중앙의 가장 뽀족한 봉우리가 영취산 정상.

 

 

능선을 향해가는 산벗들, '마을 뒷산이라 카더만, 와 이리 힘드노!'

 

 

 8년전 불탄 자리가 흉물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이 상처가 아물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지....

 

 

절벽에 붙어있는 구봉사의 모습이 아슬아슬 볼만하다. 운문사 사리암, 설악산 봉정암을 연상케 한다. 재(齋)를 지내는지 망자를 달래고 시왕(十王)을

어르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간절하고 우렁차게 들린다. 온갖 업과 인연의 끈을 놓고 이승에서 지은 죄업을 씻고 밝은 저 세상으로 천도되길 기원한다.

오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한 하늘이다. 우측의 자그마한 법당 세채가 구봉사, 왼쪽이 충효사.

 

 

 

정상을 앞두고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데 기암괴석은 눈길을 오래 잡아끈다.

 

 

 

석가여래입상 같이 서있는 바위가 신비롭다. 혹자는 '남근석'이라고 하는데 두부를 잘라 놓은듯 어긋나 있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영취산 정상(681.5m) 정상석이 뽑혀 굴러다니는 것을 돌로 받쳐 놓았다.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살았을까 고단한 소나무 한그루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렸다. 하필 바람은 저곳으로 인도 했을까. 

그래 그자리가 '꽃자리'다. 지나는 산객마다 한마디씩 격려를 했으리라.

 

 

 

절집에 들어서니 뜻밖에도 두 절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한집안 두 살림처럼 구봉사와 충효사가 담 하나로 어께를 걸고 있다. 그런데 속내는 그 모습만큼

우애롭지는 않은가 보다. 가파른 벼랑에 위치해 있어 무거운 짐을 나르는 곤도라가 필요한 듯 보이지만 두 절이 따로 따로 설치하여 산의 훼손도 두 배고

유지 운용도 따로 따로 해야 하니 이런 비효율도 없다.산 아래 중생들  세상이야 흔한 일이라지만  부처님 법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사가 이렇게

해서야 될 법인가. 멀리가지 않더라도 최근 법정스님은 비우고비우고 빈 몸으로 가는 것을 온몸으로 실천하셨는데, 조금만 내가 양보하고 손해 보자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천해 절경에 위치한 절의 경치만큼이나 안팎으로 아름다운 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씁쓸했다.
구봉사로 많이 알려졌으나 충효사에는 신도들이 들끓고 있고 구봉사는 늘 조용하다고 어느 신도분이 귀띔 한다. 산사는 조용한 게 좋은가!

속세처럼 번잡한 게 좋은가? 아이러니다.

 

 

물고기 처럼 늘 깨어있어라. 구봉을 넘나드는 물고기는 푸른 하늘 바다에서 거침이 없는데....

 

 

고단한 임도를 걷는 도중 눈에 들어온 분홍노루귀, 30여분을 이녀석과 놀았다. 

전날 천성산에서 계곡에 붙어있는 들꽃을 담다가 미끄러져 왼쪽 팔을 조금 삐었다. 움직이기가 불편해서 작은 똑딱이(컴펙트 디카) 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작은 노루귀 담느라 진땀을 뺐다. 그래도 볼만하다. 

 

 

 

 

 

  

 

제비꽃, 종류가 하도 많아 성은 모르겠고, 그냥 제비꽃들....

 

 

 

 

시산재에서 정성을 다해 기원을 하는 황령산악회 강명호 회장.

 

 

유--세--차
단기4343년 3월28일 황령산악회 회원일동은 영취산 자락에서 산신령께 주과포를 진설하여 시산재를 올리오니 강림하시와 흠향하시고 저희들의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저희들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 주시옵고.....
∼∼∼
힘을 주시고 험한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두다리가 지치지않도록 힘을 주시고 천지간의 모든 생물은 저마다 아름다운 뜻이 있나니

풀 한포기 꽃한송이 나무 한그루라도 함부로 하지 않으며 새 한마리 다람쥐 한마리와도 벗하며 추한 것은 덮어주고 아름다운 것은 그윽한 마음으로

즐기며 산을 닮아 좋은 사람들이 되고 싶나이다
∼∼∼

 

 

 

 

2010.  3.  28.  창녕 영취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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