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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

구름하나 바람소리

by 실암 2010. 1. 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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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산은 헐겁고 빈약하다. 녹음을 벗어버린 수목은 엑스레이 영상처럼 앙상하다.
          깊게 들어온 햇살이 맨살을 어루만지지만 쌀쌀맞은 바람이 그 사이를 파고든다.
          봄 여름 가을 다채롭던 색은 바래지고 씻겨 쓸쓸하다. `갈 봄 여름 없이' 피던 꽃들도 죄다 땅으로 눕고, 습기는 안으로만 흘러 목이 탄다.
          칼바람에 맞서 버티고 선 나무도 보는 이들도 삭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눈 덮인 겨울산의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남덕유산을 찾았지만 칼바람만 맞고 왔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겨울 산행의 백미는 눈 덮인 마루금을 걷는 것이 아닐까!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가지마다 흰 눈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나무 사이를 걷는 것은 황홀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상상하며 아이젠과 스패츠를 준비했지만 결국 짐만 되었다.
          눈길은 일주일전 북덕유산(향적봉)에서 원 없이 걸어 봤지만 눈꽃이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왔었다. 
          남덕유산은 특히 눈꽃과 상고대가 유명해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 눈꽃 산행지'로 알려질 만큼 눈이 많은 산이다. 따라서 주말, 휴일엔 전국에서 수많은

          산객이 찾는다.
          이날도 휴일을 맞아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관광버스 행렬이 이어져 한바탕 주차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영각사 앞 남덕유산 3.8km 이정표를 보고 걷기 시작하면 흙길은 불과 몇백미터, 남덕유산 정상까지는 줄 곳 계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각사 입구에서 완만한 흙길을 30여분 걷고 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고 돌계단의 연속이다. 돌계단에 몸서리가 날 때 쯤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나고

          한 순배 진땀을 빼고 나면 영각재 안부에 올라선다.
          영각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오른쪽 하봉과 왼쪽 남덕유로 이어지는 삼거리인데 해발 1300m다.
          영각재에서 하봉을 거쳐 남령으로 가는 길은 자연휴식연제로 입산 통제구간이다.
          영각재까지는 산길이 그런대로 넉넉해서 많은 이들이 몰려도 오르는데 큰 불편이 없었지만 영각재에서 남덕유로 오르는 길은 겨우 한사람이 오를 수 있는

          협소한 길이다.
          인파에 떠밀려 몇 발짝 겨우 올라 뒤돌아본 광경은 물이 말라가는 작은 봇도랑을 거스르기 위해 고물거리는 물고기마냥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남덕유 산행의 별미는 뭐니뭐니해도 두개의 암봉을 넘나드는 하늘다리 철계단이다.
          힘들여 건설했지만 교행이 어렵게 폭이 좁아 오늘처럼 많은 인파가 몰리면 철 계단 아래에서 오래 기다려야한다. 긴 기다림 끝에 철 계단에 오르면 이번엔

          가파른 계단이 발걸음을 잡는다.
          반대로 내려오는 사람도 많고 교행이 안 되니 정체는 더욱 심해진다. 등산로를 이탈하는 이들도 있어 위험할뿐더러 끼어들기를 하니 정체가 심해진다. 
          급기야 산행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빽빽이 서있으니 그 곳을 비집고

          나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철계단을 오른 뒤 다시 위험한 외길 바윗길을 내려서서 가파른 철 계단을 다시 오르면 전망대다.
          전망대에 오르면 우측으로 북덕유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희끗희끗 반백의 모습으로 조망되고, 좌측으로 지리산이 뿌연 연무에 구름을 덮어 쓰고

          아스라하다.몽롱하고도 완강한 지리산 마루금이 풀어질 듯 안개속에 잠겨있다.
          남덕유 정상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얼굴을 할퀴며 달려들어 오래 지체하지 못한다. 
          이곳부터는 정체가 풀리고 나아가기가 수월하다. 우여곡절 끝에 1,507m 남덕유산 정상에 올랐다. 영각사 입구에서 10시에 출발하여 오후 1시 30분에

          올랐으니 3시간 30분이 걸렸다. 일망지하 정상에서 조망은 거침이 없다. 정상 표지석을 안고 기념사진 찍기도 전쟁이다.
          장수덕유산(서봉)을 아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오던 길로 내려선다.
          함께 온 30여명의 산악회원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전혀 보이지 않고 내내 함께한 짝지와 정상 바로 아래에서 컵라면과 복분자로 추위를 달랬다.
          그 사이 길이 조금 헐거워졌다. 알고 보니 함께 온 산악회원 대부분은 철계단 아래에서 지쳐 점심을 먹고 바로 하산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산악회원 중 정상까지 오른 사람은 대 여섯명이 전부였다. 
          평소보다 무거운 발걸음, 오후 3시 30분 영각사에 도착 산행을 마무리했다.
          오늘 산행은 심한 바람과 높은 기온에 눈도 서리꽃도 없어서 실망이다.
          눈꽃 보러 왔다가 많은 인파에 치여 생고생만 한 것 같다.

 

 영각재에서 남덕유로 오르려는 산객들이 걱정스런 모습으로 삼삼오오 기다리고 있다.

 

 영각재에 몰린 사람들

 

 첫 철계단 앞에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다.

 

 긴 기다림끝에 철계단에 올라

 

 

 힘겹게 올라온 철계단을 위험한 바위길로 내려서서 다시 철계단을 올라야 한다.

 

 

 자신의 덩치만큼 큰 배낭을 맨 산객을 만나고, 위험하게 등산로를 이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첫 전망대에서 함께한 짝지, 멀리 뒤로 남덕유산 정상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본 지리산, 시계는 좋았지만 산그리메는 별로다.

 

 북덕유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전망대에서 뒤를 돌아보니 기다리는 인파는 끝이 없고

 

 남덕유 정상에서 겨우 한 컷.

 

 그 사이 향적봉은 구름에 쌓여 있다.

 

 지리산 천왕봉도 구름 삿갓을 쓰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장수덕유산(서봉), 눈꽃이 가장 좋다는 산길인데 삭막하기만 하다. 오늘은 여기서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내려오며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정상과 산길

 

산행을 시작하며 한자리에 모인 황령산악회 산벗들

 

2010.  1.  24   남덕유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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