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근속휴가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누구는 근사한 해외여행을 다녀왔노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지만
나를 찾아 떠나는 고행의 시간을 가져 보자는 마음으로 종주를 계획 했다.
그렇지만 고유가와 바닥을 기는 경제, 촛불 정국까지 나라를 휘감고 있는 암울함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고통으로 전달되고, 며칠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도 조심스럽다.
더군다나 아내와 단 둘이서 장마철에 휴가를 내어 떠나게 된 지리산 종주.
애초부터 무리한 계획이었을까. 결국은 1박 2일 반야봉 등정으로 기대를 접어야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일요일. 설렘 반 걱정 반 노고단 대피소에서의 하룻밤은 특별했다.
땀에 절인 담요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는 30년 전 훈련소 내무반의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게 할 정도로
온갖 향기(?)를 남기고간 뭇 산님들의 채취가 둔감한 나의 코를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아내는 가져온 수근으로 얼굴을 덮고 잠을 재촉하지만 좀 채 잠들지 못하는 눈치다.
자정까지 들락거리는 산님들, 배낭 뒤지는 소리, 코고는 소리, 뒤척일 때마다 풀석풀석 달라붙는 향기
때문에 짧은 여름밤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새벽5시. 가져온 밥과 김치를 넣어 푹푹 삶은 김치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운해의 바다. 하늘과 발아래는 온통 구름뿐, 노고단의 운해는 발길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구름위에 떠있는 노고단. 노고단의 배에 승선한 우린 탄성을 지르며 두 어 시간 그렇게 흥분했다.
노고할미호를 타고 망망대해를 마음껏 항해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지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왕봉 가는 숲으로 들여 놓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임걸령에서 노루목을 오르면서 아내의 무릎에 탈이 나는 바람에 종주는 포기해야만 했다.
무리한 산행은 위험을 동반한다. 산에선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노루목 길옆에 배낭을 놓아두고 반야봉을 다녀왔다.
안개비가 되었다가 굵은 비가 내리다가 날씨는 종일 발걸음을 힘들게 한다.
다시 노루목에 내려서며 연하천으로 향하는 산님들과 격려의 인사를 한다.
무사히 종주하시길... 그 길을 언젠가 뒤따르겠노라고...
노고단으로 되짚어 오는 길도 만만치 않다. 불편한 무릎으로 뒤따르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인데
아내는 자신으로 인해 종주를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것이 미안한 듯 불평한마디 없다.
새벽 6시에 노고단 대피소를 떠나 노고단 고개 - 돼지령 - 피아골 삼거리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
-노고단 고개 - 노고단 대피소 - 성삼재엔 오후 4시에 도착했다.
나를 찾아 떠난 지리산행. 남은 한해의 자양분이 되어 힘들 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할 것이다.
<흰망태버섯>은 지리산에서 내려와 담양에서 얻은 귀한 선물이다.
▲▼ 노고단의 운해 - 노고단 KBS 송신탑아래에서 바라본 섬진강쪽
▲ 노고단 고개 - 서울에서 혼자 왔다는 여성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반야봉의 운해 - 하루 종일 반야봉은 구름속에 있었다.
▲ 노고단 정상도 구름속에......
▲ 돼지령에 핀 범의꼬리 군락
▲ 등산로에 곱게 핀 흰꿩의 다리
▲ 더 못가겠다고..., 그럼 반야봉이라도 다녀 와야쥐!!!!!
▲ 반야봉에서 유일한 철사다리구간을 오르고
▲ 장대나물이 빛물 보석을 달아 무척 아름답다.
▲ 진달래가 아직 꽃잎을 달고 있다.
▲ 구름속의 반야봉(般若峰 1734m) -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다.
불교 경전의 말씀처럼 般若의 저 언덕에 올라설 수 있다면, 온갖 분별과 망상과 아집에서 벗어나 참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마음속에 엉어리진 현실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잊게하는 반야의 오름이었다.
돌위에 카메라를 놓고 찍었는데 캄캄한 밤중이다.ㅎ
▲ 물맞이 좋은 임걸령 샘물
▲ 개화를 앞둔 지리터리풀도 반긴다.
▲ 되돌아온 노고단 고개 - 반짝 햇살이 보였다.
▲ 노고단 대피소 - 늦은 점심을 라면으로 먹고 성삼재로
▲ 성삼재에서 바라본 노고단 - 여전히 구름속이다.
▼ 아래 사진은 아내가 찍은 것이다.
▼ 열번째 종주를 한다는 분(밤 늦게까지 술드시고 술기운으로 종주한다는 분ㅎㅎ )이 찍어준 사진
임걸령에서 이때 까지도 좋았는데..., 여기서 노루목까지 바짝 치고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 산행일시 : 2008. 6. 2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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