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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계와 산자의 몫

신문속의 오늘

by 실암 2005. 9. 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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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부산 금정산 범어사 보제루. 간간이 흩뿌리는 빗속에 '묵언'의 행렬이 찾아들었다.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我有一鉢囊)/입도 없고 밑도 없다(無口亦無底)/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受受而不濫)/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出出而不空).'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임종게 아닌 임종게,열반송 아니 열반송이 조문객을 맞는다. 지난 11일 새벽 입적하기 전에 시자 진광 스님의 요청을 받고 노트 뒷장에 써준 글귀다. 갑작스럽게 원적에 드는 바람에 '고통은 제게 버려 주세요. 제가 다 짊어지고 가겠습니다'고 했던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법장 스님의 저서)의 진면목이 오롯하다.

지난해 11월 18일 부산 금정산 범어사 보제루. 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차례 역임한 석주(昔株·당시 봉은사 칠보사 조실) 큰스님의 영결식이 열리고 있었다. 1909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1928년 부산 범어사에서 남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수구초심인 듯 늘 '금정산인(金井山人)'을 자처했고 그리던 금정산 품안에서 이승의 연을 다했다. 5천여명의 조문객으로 범어사 보제루에서 다비장까지 인산인해를 이룬 추모 행렬 속에는 종정 법전 스님은 물론 총무원장 법장 스님도 건강한 모습으로 큰스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큰스님은 입적에 들기 전 임종게를 묻는 제자들에게 '부처님 열반경이 임종게이거늘 어찌 임종게를 남기겠는가. 열반경이 임종게이니라'며 '사리도 수습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

'달리 할 말이 없다. 정 누가 물으면 그 노장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갔다고 해라. 그게 내 열반송이다.' 지난 2003년 3월 29일 경북 문경 봉암사 염화실에서 입적한 불교 조계종 전 종정 서암(西庵·당시 봉암사 조실) 큰스님은 제자들이 열반송을 남길 것을 간청하자 '나는 그런 것 없다'고 몇 차례 고사하다 남긴 말이다. 소탈하면서도 꼿꼿한 수행승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7월 지리산 쌍계사 여름수련법회 취재 때 만난 고산 큰스님(쌍계사 조실·부산 혜원정사 방장)은 80명에 달하는 수련생들을 다비장으로 이끌었다. "좋제,명당 자리제. 쌍계국민학교 자리가 옛날 쌍계사 다비장인데 기증하는 바람에 지금은 없어. 내 다비할라고 새로 다비장 만들자 하니까,제자들이 스님 빨리 가시려고 그러느냐 자꾸 반대해서,그러면 더 오래 산다고 했지. 내 다비하면 다들 올거제. 좋제,명당 자리제."

지리산 쌍계사에서 국사암을 거쳐 백운산이 바라다보이는 쌍계사 다비장,금잔디를 입히며 한창 공사 중인 다비장 둑에서 달빛을 받고 수련생들은 명상에 들어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어디인지,시체 옆에서 몇 달간을 머물면서 육신이 썩어서 백골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수행법인 백골관(白骨觀)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 큰스님의 가르침일까. 다비장은 제홀로 깨어나 저마다 저잣거리에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15일 다비 없는 영결식이라는 한국 불교 초유의 죽음을 맞이한 법장 큰스님. 범어사 석주 스님 가실 때 제자들은 입을 앙다물고 속으로 울고 있었는데,법장 스님은 고아들을 거둬 제자로 삼아 사제가 아닌 육친의 정이 조계사 마당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주검마저 기증한 스님의 법구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를 기원하며,삼가 법장(法長) 큰스님의 명복을 빈다. 

 

<2005.9.14(수)부산일보 '노트북단상'/임성원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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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나눠주고 퍼가도 마르지 않는 샘같은 큰 스님의 바랑.

육신은 본래 내것이 아니고 잠시 빌려왔으니, 새로운 생명을 위해 기꺼이 내 놓으신 법구.

담아가기에만 아니 모으기에만 급급한 마음의 이기심을 되돌아 보게한 스님의 무소유 실천.

"오늘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선물 하나씩 나눠 주겠어요. ...... 내가 법당밖에 큰 바랑하나

걸어 놓았으니 괴롭고 슬프고 억욱함 분기는 모두 던져 넣고 가세요. 그리고 기쁨과 희망과

이해와 사랑은 모두들 하나씩 가져 가세요. 내 바랑은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

퍼가도 퍼가도 모자람이 없담니다." -얼마전 모 TV 기념법회의 말미에 하신 큰스님법문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오늘 법장큰스님의 크나큰 법을 만남에 과연 나의 바랑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큰스님의 명복을 빌면서,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낙산사 원통보전  <별꽃무늬담장> -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가장 아름다운 담장”이라고 극찬했는데 지난해 낙산사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고(?).....

    2003년 여름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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