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질반질 윤기 흐르는 장독대 아래에 할미꽃이 곱게 피었다. 어린 날 집 마당 한쪽에 있는 조촐한 장독대가 이와 같았다. 햇살 가득한 오후, 장독들은 묵묵히 서서 간장 된장의 깊은 꿈을 품고 있었다. 할머니는 대대로 물림 한 장독들을 손주 머리 쓰다듬듯이 정성스럽게 닦았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시곤 했다. 장독들이 긴 세월 익혀 온 씨간장의 향기를 살폈고 된장의 맛을 보셨다. 나는 그 곁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할미꽃을 바라보곤 했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시골집 장독대에 스미는 봄날의 나른한 햇살과 할머니의 손길은 잊을 수 없다. 문득 할머니가 그리운 봄날이다.

2026. 3. 25. 부산진구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