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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삼성궁(三聖宮)

사진과 雜記

by 실암 2005. 12. 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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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임(檀因), 한배웅(檀雄), 한배검(檀君)을 모신 건국전>

 

-삼성궁의 취지
우리 배달겨레는 일만년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며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한 찬란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기에, 문화겨레임을 자부하나, 우리 겨레에 대한 역사인식이 없음을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민족의 현실은 가문의 전통을 지키는 숭고한 정신은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지만, 겨레의 뿌리인 국조를 숭배하는 정신은 그 무엇보다 희박하다.
겨레의 출발인 옛 한국으로부터 8000여년이 지난 고구려를 이어 발해마저 사라지자 도방 최고의 민족혼은 사라지고 대륙의 역사는 반도의 역사로 바뀌면서 1300년 이민족 침탈이라는 굴욕을 맞았다. 우리를 침략하던 이민족들은 민족분열정책, 민족문화 말살정책등을 강행하니 침략자가 바뀔때마다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온 외래문화, 외래지식, 외래종교는 우리 민족의 정신과 우리의 주체성을 휘청거리게 하였고, 심지어 그들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서, 민족경전 등 20여만권을 불살라 버렸다.
이제 우리는 장시간의 악몽에서 깨어나 우리의 혼, 우리의 정신을 되찾아 민족의 주체성과 민족의 정기를 바로하는 민족부흥의 대역사를 이룰 때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먼저 배달겨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배달의 후에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사상을 초월한 배달성전을 세워야 한다.
이에 삼성궁은 한민족의 이상향이자 선도문화의 세계를 지향하는 청학동에 수두를 세움으로써 민족성전을 일으키고 있다.<삼성궁 안내 팸플릿에서 자구 수정없이 옮김>

 

<건국전 북쪽벽의 용무늬 조각>

 

-삼성궁-배달민족의 역사 문화의 이상향(理想鄕)
삼성궁은 배달민족 성전으로 한배임(檀因), 한배웅(檀雄), 한배검(檀君) 및 역대 나라를 세우신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신성한 성역이다.
뿌리없는 나무가 있을 수 없고, 근원없는 강물이 있을 수 없듯 인류의 역사가 있음에 그 민족의 조상이 있는 것은 하늘이 정한 아름다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소도(蘇塗)라는 성역을 세워 하늘에 제 지내고, 배달민족 고유의 정통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全戒經)의 삼화경과 삼륜(三輪) 오계(五戒) 팔조(八條) 구서(九誓)의 덕목을 가르쳤다.
또한 소도(蘇塗)에는 경당을 설치하여 국자랑(國子郞)들에게 충(忠)�효(孝)�신(信)�용(勇)�인(仁) 등 오상(五常)의 도를 가르치고 독서,습사,치마,예절,기악,권박(讀書�習射�馳馬�禮節�歌樂�拳博)등 육예(六藝)를 연마시켰다.
옛 소도를 복원한 지금의 삼성궁은 배달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의 맥을 지키며,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고유의 도량으로서, 오늘날 잃어버린 우리의 위대한 얼과 뿌리를 천지화랑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실현한 민족 대화합의 장이다.<삼성궁 안내 팸플릿 옮김>

 

 

 

 `한단고기(桓檀古記)' 와 `단기고사(檀奇古史)' 및 `규원사화(揆園史華)' 등에 따르면 한인은 지금부터 약 9천2백여년전 태고시대 중앙 아시아 천산(天山)을 중심으로 있었던 한국(桓國)의 7세한인(七世桓因)들 가운데 초대 한인을 말하고 한웅은 고조선 이전 배달국의 18세 한웅들 가운데 초대 한웅천황을 일컬으며, 단군은 고조선의 47세 단군들 가운데 초대 단군왕검을 지칭한단다.
그런데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바로는 이들이 모두 신격화되고 신화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삼성궁에서 안내하는 수자(수행자)의 말에 의하면 이는 모두 침략자(일제 등)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신격화한 것인데, 우리들은 아직까지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주장이다. 즉 단군은 신이 아닌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삼성궁 관람에 앞서 수자가 설명을 하고 있다>

 

<삼성궁에 있는 돌탑들은 그 모양이 맷돌형 원추형 등 다양하고 미려하여 설치미술가들도 감탄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삼성궁은 한풀선사-지리산 묵계골에서 태어남. 평범한 산골 아이였지만 6세때 증산도 신도였던 부모에 의해 낙천선사(樂天仙師)라는 도인에게 의탁되어 성장. 한빛선사(1860-1945)에 뒤이어 우리 고유의 선도(仙道) 명맥을 전수받았다'는 낙천선사와 지리산 세석고원 근처에서 기거하며 선가무예인 선무(仙武)를 비롯, 선도를 배움-에 의해 조성되기 시작됐는데 그는 스승으로부터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라"는 명을 받고 21세 때인 1984년부터 화전민마저 떠나고 없던 지리산자락 묵계골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터를 닦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1300개의 돌탑(전북진안 마이산의 돌탑과 흡사함)을 세우고, 수행하는 수자가 10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삼성궁을 관람하려면 우선 석문앞에서 징을 세번 쳐 손님이 왔음을 알리면 수자가 나와 정중히 손님을 맞이하는데, 삼성궁에 대한 자세한 취지와 우리겨레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감동적인(?) 설명을 듣고 '배달의 길'을 따라 관람하게 된다. (6년전 이곳에 왔을 때는 안내하는 수자가 칼도 차고 있었고, 관람객중 대표 한명은 고구려식 삼성궁의 도복을 입어야 하는 등 좀 어시시한 분위기라고나 할까 위압감을 느꼈었다.)

 

<연못의 조형적인 모습, 3개의 큰돌은 세 성인의 뜻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삼성궁 가는길의 가을 빛-노란 낙엽송이 유난히 눈부시다>

 

=삼성궁은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청학동에 있다.

 

=이곳에서 조금 위쪽에 청학동 도인촌이 있다.

 

<청학동 모습-마을길을 이처럼 온통 이질감나는 돌과 시멘트로 포장해 놓았다>

 

`청학동(유불선합일갱정유도 도인촌)'은 천하 제일의 명승지로서 모든이들의 동경의 관심사였으나 필자가 6년만에 다시찾아 본 바로는 지나치게 관광지화되어 그 신비로움이 모두 사라진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하회마을에서와 같이 한 집 건너 상점이듯이 이곳 또한 마을 전체가 거의 상점화 되어가는 듯 했고, 마을길은 돌과 시멘트로 포장을 하여 양복입고 갓쓴 노인 같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또한 삼성궁 아래에도 산 기슭을 따라 우후죽순처럼 서당촌이 들어서고 관광지화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다.

<2005.11.20(일) 방문, 사진은 Nikon D70s 17-55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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