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길고양이의 하루하루는 고달프다.
야외 화장실 옥상의 종이 박스 집에서 사는 고양이 가족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아슬아슬이다.
10일 전 쯤 서점 뒤 안이 소란해서 나갔더니 뒷집 아저씨 내외와 우리 건물 문방구 아주머니와의 격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연인 즉, 뒷집 주택 2층 빈방에 길 고양이가 몰래 들어와 새끼를 낳아 기르고 있다고 했다.
언제 낳았는지 새끼들이 많이 커서 기어 다닌다고 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는 방이라 전혀 몰랐다며...
뒷집 아주머니는 "들어 올 곳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며 짜증스런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문제는 뒷집 아주머니가 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하여 어디든 밖에다 내다버리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내 집이 편하다고 들어와 새끼를 낳은 동물을 내다 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벌써 새끼가 기어 다닌다니 곧 키워서 나갈 것 같은데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간청을 했다.
속으로 "고양이가 영물인데 내치면 안 되는데....."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야 겠네요" 하며 길고양이의 무단 주거를 허용 하는 듯해서 안심이 되었다.
느닷없는 소란은 이렇게 일단락 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음날 사건은 황당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날 밤 뒷집 아저씨가 새끼 네 마리를 종이 박스에 넣어서 우리 건물 야외 화장실 옥상에 갖다 놓고 말았다.
정말 무지막지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왜 하필이면 남의 집에 갖다 버리느냐고 했더니
"내가 매일 우리 집 2층에서 보고 있으니 조금만 참아 달라, 우리 할마이가 고양이를 너무 싫어해서..."라며
간절히 부탁을 하는 통에 더 이상 일을 크게 벌이지 못하고 좋게 넘어 갔다.
졸지에 쫓겨나 찬 시멘트 바닥 옥상에서 어린 새끼를 보듬고 떨고 있을 고양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렇다고 이 녀석들을 내려서 어디 마땅히 둘 곳도 없거니와 내 처지도 세 들어 사는 입장으로 어쩔 수 없어 짠한 마음 뿐이었다.
몇 일 전에는 새끼 한마리가 떨어져 겨우 붙잡아 올려 주었는데, 몇 일 지나지 않아 한 번 떨어 졌던 이 녀석은 다시 떨어져서
지금은 아예 1층 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미는 이 녀석을 위해 내려와 젓을 주고, 다시 올라가 나머지 녀석에게 젓을 물리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미가 옥상에 올라가면 1층 녀석이 울고, 1층 녀석을 보살피려 내려가면 옥상 녀석들이 울고....
요즘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
고양이를 위해 문방구 아주머니와 내가 멸치, 우유 등을 갖다 주기도 하는 등 작은 정성을 쏟고 있다.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아침에 출근해 보니 새끼들의 털이 온통 젖어 있어서 마음이 짠했다.
비를 맞으며 밤새 서로 부둥켜안고 떨었을 것을 생각하니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지 못한 게 미안하다.
이제는 제법 커서 곧 이사를 할 것 같아 그래도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나저나 녀석들이 좁은 두 칸짜리 화장실 옥상에 기거하면서 대소변을 그곳에서 해결하다 보니 파리가 들끓어 성가심이 말이 아니다.
다만 한 녀석도 유고 없이 무사히 잘 자라 집을 비워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천진남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새끼고양이
화장실 옥상에 있는 세 마리 새끼와 어미 고양이
2017. 6. 8. 부산진구 양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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