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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추억'의 모데미풀

들꽃뫼꽃

by 실암 2016. 4. 1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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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저 없이 모데미풀을 4월의 꽃으로 꼽고 싶다.

수 년 전 태백산 계곡의 채 녹지 않은 얼음덩어리 겨드랑이에 핀 모데미풀을 보고 그 경이로움에 감탄했었다.

그 이후 일상은 모데미풀을 외면했고, 봄이면 늘 모데미풀 알이를 했다.

봄의 끝자락 우주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게 해주는 이 작은 생명체의 이끌림에 먼 길을 나섰다.

일본 구마모토 지방의 지각판이 몹시 흔들린 여파가 한반도의 대기를 흔들어 놓은 것일까 주말 밤 비바람이 거세게 몰려왔다.


문경새재에서 가진 초등 동기회를 마치고 저녁 9시에 강원도로 향했다.

그 시간 비바람은 고속도로를 저속도로로 바꿔놓고 있었는데 겨우 80km를 넘지 못하게 발길을 잡았다.

모데미풀의 꽃말인 '슬픈 추억'이 밤새워 달리는 고속도로 상에서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거친 비바람이 슬픈 추억이 되지 않고, 모진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염원하며 달렸다.

아침이 되자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히 강풍 수준으로 계곡의 안개를 몰아내고 있었다.

밤새 비바람에 두들겨 맞은 모데미풀의 여린 꽃잎에는 그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마저도 청정 자연속에서 청아한 계곡물 소리처럼 귀품 있고 고귀해 보였다.

해맑게 웃는 모습은 간밤에 이 계곡에는 오로지 평온만이 존재했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같은 모데미풀과 눈 맞춤 할 수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지난 밤 힘겹게 달려온 고생이 싹 달아났다.


습하고 청정한 계곡을 좋아하는 꽃 모데미풀.

계곡 이끼와 어우러져 사진적 완성도를 한층 높여 주는 곳인데 촬영조건은 최악이었다.

그나마 안개를 염두에 뒀지만 바람의 심술로 허탕.

강한 바람은 셔터속도를 빼앗아 가고 마음먹은 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작은 생명체의 부름에 장화에 물 들어오는 줄도 모르게 엎드려 숨을 죽였다.

"다시 봄이 오면 '좋은 날 좋은 시'에 다녀가마 전해라"







2016. 4. 17. 강원도 횡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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