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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

들꽃뫼꽃

by 실암 2011. 10. 29.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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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작사.작곡. 양희은 노래>

 

     해 뜰 무렵 묘지 앞에 엎어졌는데 양희은이 부른 '아침이슬'이 흥얼거려 졌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이 노래와 함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을 골방에서 기타 연주를 하곤 했습니다.

     자욱한 연기(?) 속, 친구의 자취방에 둘러 앉아 반항기 짙은 일탈을 일삼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5년에 금지곡이 되었다는데, 성인이 된 후에야 알았습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노래' 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유신이 쓰러지고 12.12와 5.18 등 격동기에는 이 노래가 '친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 온 '풀잎마다 맺힌' 이슬과 노랫말이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아침이슬', 바삐 걸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앞만 보고 서두르다 보면 보이지 않습니다.

     천천히 걷는다 해도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팔꿈치를 꺾어 적진으로 기어가는 포복 자세라야 온전히 볼 수 있습니다.

     빛의 반사점을 찾아 카메라를 땅에 붙이고 요리조리 잔디밭을 기어 다니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아랫도리는 물론 앞섶이 온통 걸레 빨아놓은 것 같이 후줄근해진 제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지만 "영롱한 보석이 내 몸에 스미는데 무슨 대수겠습니까?" 

 

     묘지의 꽃들은 키가 다 작습니다. 봄부터 부지런히 키워 온 제 몸은 추석을 앞두고 잘려 나가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족을 위해서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어쨌든 부실하지만 2모작이라도 해야 하니까요.

     난쟁이 쑥부쟁이 꽃을 피웠습니다. '가쁜 숨을' 이슬이 촉촉이 적셔 주고 있습니다.

 

 

 

     한낱 볼품없는 쇠뜨기가 영롱한 물 보석과 빛 보석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쇠뜨기는 봄에 올라오는 '포자경'을 주로 사진으로 담습니다.

     떨어진 솔잎 같은 '쇠뜨기 영양경'에 이슬이 맺히지 않는다면

     누가 거들떠보기라도 하겠습니까.  

 

  

 

     냉이 끝에 앉은 등애가 이슬을 말리고 있습니다. '태양이 묘지위로 붉게 타오르면' 

     '거친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겠지요.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기다려야 할 때.

     고들빼기도 이슬을 머금고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쇠뜨기 가운데 방동사니가 목을 빼 올리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물가에 있어야 정상인데, 한 낮 '타는 목마름'을 어찌 견딜지.... 

 

 

 

 

 

 

 

 

     민들레, 낱 씨들은 모두 떠나고 이제 남은 몸뚱이도 한줌 거름으로 돌아가겠지요.

 

 

 

2011.  10.  23.  경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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