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하늘과 땅과 나무에도 온통 눈세상이란다.
이런 날은 카메라 꺼내 보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하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나무마다 소복소복 눈꽃이 폈는데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니 아쉽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인이 알려왔다.
다음날 마침 토요일이고 날씨도 쾌청하다니 대박 터트릴 일만 남았겠다 싶어서 잠을 설쳤다.
새벽을 달려 8시에 도착한 무주리조트는 장터와 다름 아닌데, 일찍 서두른 덕에 8시50분 운행하는 첫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설천봉에 내려서니 하늘은 파란 물감을 쏟아 놓은 듯 짙푸른데 눈꽃도 상고대도 없다.
눈꽃이 나뭇가지에 붙었다가 지난 밤 새 찬 바람에 죄다 떨어진 듯 하다.
상고대는 가지에 달린 얼음이니 웬만한 바람에 떨어질리 만무하고 상고대는 아직 피지 않았다.
눈꽃이 없어 아쉽지만 무릎 높이까지 쌓인 많은 눈과 키 큰 소나무엔 뭉텅이 눈이 걸려 있다.
무엇보다 맑고 쾌청한 날씨와 시계가 좋아서 사진 만들기는 최적이다.
주말을 맞아 사진가와 등산객이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선다. 설천에서 향적봉 가는 길이 비좁다. 산길도 정체다.
향적봉에 올라서니 겹겹의 마루금이 아득히 눈앞에 펼쳐진다. 남덕유와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군이 수묵(水墨)으로 흐른다.
동엽령, 남덕유를 넘어 지리산 반야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허리에 하얀 치마를 두르고 파도처럼 일렁인다.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인다고 능파라 하고 산 그림자가 춤을 춘다고 산그리메라 했는가.
겨울의 덕유는 저체도 흑(黑)의 일변도에서 백(白)이 더해짐으로써 산색을 읽기가 수월하고 새롭다.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서면 다시 다가오는 마루금의 그 헐거워진 공간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무시무종(無始無終) 어디가 먼저고 끝도 없이 생성과 소멸의 윤회가 거듭되는 산그리메는 오늘도 덕유를 넘어 아득한 저편으로 흐른다.
2010. 1. 16 덕유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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