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배롱나무 / 도종환>
배롱나무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교목.
붉은 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백일홍나무(木百日紅), 또는 자미(紫薇)라고도 부른다.
5m정도로 자라는데, 7∼9월에 붉은색의 꽃이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어 핀다. 흰꽃배롱나무도 있다.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고, 빨리 성장하여 가지를 많이 만들어 쉽게 키울 수 있어서 정원 가로수로도 인기가 많다.
내한성이 약해서 남부지방에서 잘 자란다. 부산 양정동에 있는 배롱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나이가 약 800년인 것으로 보고 있다.
국화과에 속하는 초백일홍(草百日紅)인 백일홍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백과사전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