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끝난 봉답(奉畓) 비탈 언덕에 홀로 서 있는 노거수도 한해를 갈무리하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겨우 붙어 있는 잎들도 잔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잎들을 떠나보내야 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으니 노거수의 지혜가 놀랍다. 모세혈관 같은 셀 수 없는 잔가지가 겨우내 얼지 않고 봄을 맞이하는 것 또한 기적에 가깝다. 이 노거수는 산골 지방도로 옆에 있는데 고향에 갈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반긴다. 밑동부터 갈라진 많은 가지는 여러 나무가 합쳐진 것처럼 보인다. 마치 수만은 손과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친견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 앞에 서면 늘 경건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한해를 잘 견딘 노거수가 희망을 들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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