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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에서 붉은 달을 보다

사진과 雜記

by 실암 2022. 4. 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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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집 뒤 솔밭의 산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는데 밤이나 낮이나 이곳에서 자주 놀았다. 공기가 싸늘한 밤이면 낮에 데워진 상석(床石)은 의자처럼 앉아서 놀기가 참 좋았다.

보름달이 머리 위로 드리우는 날이면 내 그림자 가장자리가 유난히 빛나는 걸 보고 신기해하곤 했었다. 풀잎에 이슬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서 마치 후광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구름 없이 하늘은 창백했지만 달은 희고 맑고 고요했다. 달은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해 하늘에 떠 있었고,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상석에 누워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피를 토할 듯 이어지는 소쩍새 소리는 교교(皎皎)함을 넘어 무섬증을 낳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날이 밝자면 아직 세 시간여가 남은 깊은 새벽. 4월 중순이지만 공기는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맑은 보름달이 붉은 달이 돼서 지는 모습을 보고자 나선 길이었다.

창원시 의창구 백월산(白月山 428m) 남쪽 끝 벼랑 420m에 있는 정자 전망대가 오늘의 포인트. 촉수 낮은 헤드렌턴 불빛을 의지해 초행 산길을 찾아 올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겹쳐지면서 호흡이 가빠왔다. 해발이 낮다고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바다가 가까운 산은 오름이 급하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깔딱고개는 있는 법이다.

목적지까지 약 1.5km, 평소 산행길이라면 30여 분이면 족할 거리다. 그러나 밤길이고 몸도 예전의 내가 아닌 육십 줄 후반이니 삐거덕거리며 관절이 따로 놀았다. 목울대 끝까지 차오른 호흡은 엔진 과열로 단내가 났다. 1시간여 만에 포인트인 정자 전망대에 올랐다. 428분이었다.

밝은 보름달이 정자의 검은 실루엣을 바위에 그려놓고 있었다. 정자 속에 내 그림자가 들어가자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오르는 길 내내 두견새(자규)의 마중을 받으며 올랐는데 산 초입부터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들렸다. 그 가냘프고 애절한 울음은 홀로 산행이었다면 무섬증에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두견새의 울음이 어린 시절 솔밭의 추억을 오롯이 소환해 줬다.

땀 밴 등이 식자 냉골이 되어 시렸다. 계절만 믿고 여벌 옷을 챙기지 않은 것이 낭패였다. 감기들기 십상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백월산(白月山)의 원래 이름은 화산(花山)이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당 황제의 정원 연못에 하얀 보름달이 뜨면, 사자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나타나곤 해서 그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서 찾게 했다. 사자라는 사람이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이곳 해동의 북면에 이르러 눈 앞에 펼쳐진 산이 그림과 흡사하여 신발 한 짝을 산 정상 바위에 걸어두고 중국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알렸다. 마침내 밝은 달이 뜨고 연못에 신발 한 짝이 선명하게 비치자 황제가 감탄하여 산이 보름달과 같이 하얗게 비친다고 하여 백월산(白月山)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백월산에서 붉은 달을 본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달은 여전히 맑고 희게 빛나고 산은 고요하게 검은빛으로 누워있었다. 산 아래는 무리를 이뤄 동네의 붉은빛들이 박혀 있고 하늘에는 작지만 하얀 별 무리가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동쪽 하늘의 붉은 여명이 진해질수록 주위는 조금씩 밝아왔다. 서쪽 산 위의 걸린 달은 흰빛을 잃고 내면의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 뜨기 30분 전 달은 붉은 얼굴을 보여주고 서둘러 사라졌다. 백월산에서 달의 궤적을 그리려다 내공 부족으로 시간만 축내고 검은 산마루에 걸린 붉은 달을 겨우 얻었다.

2022. 4. 17. 경남 창원시 백월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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