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이 1975년부터 1992년까지 17년간 거주하며 수행하신 불일암을 다녀 왔다.
모처럼 투명한 햇살이 가득한 산과 도량, 연노랑 잎새와 진달래 수달래 들꽃들도 반겼다.
스님은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핌으로 봄이 온다"고 하셨듯이 꽃이 지천이니 봄은 절로 오는 것이리라.
"청빈은 삶의 미덕이며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며 우리에게 무소유의 지혜를 일러 주신 스님.
몸소 청빈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천하셨듯이 불일암은 스님의 모습처럼 첫 느낌이 정갈하고 깔끔해서 군더더기가 없어 보였다.
불일암 가는길의 초입은 편백나무가 빽빽하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20여분의 길은 편백향과 대숲의 정갈함에 마음까지 상쾌하다.
수많은 발걸음의 자취를 느끼게 해주는 참죽 오솔길
서걱이는 대숲 사이로 넘어온 햇살이 따사롭고, 간간히 지즐대는 새들의 노래도 정겹다.
수많은 발걸음에 패인 오솔길의 상처.
스님이 보신다면 마음 아파하지 않으실까! 흙을 덮어주고 싶은 안타까움도 있다.
툇마루에 안치한 스님의 영정. 삼배하고 앉으니 스님의 눈길이 고요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스님이 좋아 하셨던 노랫말 처럼 마음껏 그리워하자.
금방이라도 기침을 하시며 나올 듯 한데, 오늘은 바람마져 잔다.
참나무를 설겅설겅 잘라 만든 나무의자, 스님은 이 의자를 `빠삐용 의자`라고 하셨다.
스님은 "빠삐용이 절해 고도에 갇힌 건 인생을 낭비한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빠삐용 의자`에 앉아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는거야" 라고 말씀하셨다는데 투박한 의자엔 책 한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스님도 저 여성분처럼 저렇게 앉아 명상에 들었으리라.
정갈하게 잘라 쌓은 장작과 빨래줄에 걸린 법복이 이채롭다.
샘 옆에 묻은 장독대, 천연 냉장고. 이끼와 어우러져 그림이 따로 없다.
대숲 그늘에 무리지어 핀 현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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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기침을 하시며 성큼 내려설 것 같이 뜰에 놓인 하얀 고무신이 애틋했습니다.
늘 그러하듯 강원도 오두막이나 서울의 길상사에 잠깐 다니러 가신 것이라 느껴졌습니다.
스님! 다시 우리들 곁으로 돌아 오셔서 맑고 향기로운 등불을 밝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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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25. 송광사 불일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