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로 전국의 산과 바다는 뜨거웠습니다.
지난해에는 진하에서 여관도 잡지 못하고 자동차 안에서 새해 첫 해돋이를 보았었지요.
올해는 어머니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장소가 문제가 되더군요.
어머니는 허리 수술 후 저희 집에 요양 차 와 계시기 때문에 차안에서 편안히 볼 수 있는 곳이라야 했기 때문이지요.
부산은 일출명소가 많습니다. 해운대, 광안리, 태종대, 송정, 기장, 일광 등 등 ...
또한 이곳은 지자체에서 해맞이 행사를 하는 곳이고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 때문에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이 다대포였습니다. 다대포는 전통적으로 일몰이 좋은 곳이고 해넘이 행사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적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2009년 첫 날, 첫 해맞이를 어머니와 함께 한다는 생각을 하니 어릴 때 소풍가는 전날 밤 같이 들뜬 기분이었습니다.
새벽 조수석엔 중무장(?) 한 어머니를 그리고 뒤 자석엔 아내와 작은 녀석을 태우고 평소보다 일찍 출발했습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지요.
일출시각 50여분 전에 다대포 어귀에 도착. 그러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해를 맞을 수 있는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일몰전망대 일대부터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습니다.
평소 일출촬영을 하던 바닷가에 차를 세운 채 떠오르는 해를 보여 주려던 생각은 완전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몰운대 입구까지 들어갔지만 주차할 곳도 없고 좌우앞뒤로 차량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끼리라면 먼 곳에 차를 놓고 오면 되었지만 어머니 때문에 들어오긴 했는데 바다는 보이지 않고 사람과 건물에 묻혀버렸습니다.
해가 뜰 시간은 지났지만 구름층이 두터워 해는 아직 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차안에 있을 테니 너희들이나 보고 오라'고 재촉을 했지요. 죄송하지만 카메라만 챙겨 들고 바닷가로 달렸습니다.
아이와 아내는 어디로 가든 말든 혼자 달려갔지요. 들어설 자리도 없는 바닷가, 막 해가 떠오르는지 환호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런 낭패가 난 아직 자리도 못 잡았는데, 너무 많이 들어온 탓에 몰운대의 산 뒤에 해가 가려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스로 가게의 지붕으로 놓인 작은 사다리를 발견하고 올라가니 해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슬레이트 지붕의 끝 가장자리에서 손각대로 몇 장 담고 내려 왔습니다.
아내는 휴대폰으로 담아온 해를, 아들은 작은 카메라로 담아온 새해 첫 일출을 어머니께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3시간 반을 꼼짝없이 차안에 갇혀 고생만 한 새해 첫 일출 나들이였습니다.
10시가 다 되어서 집으로 돌아와 늦은 아침으로 떡국을 먹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그날 종일 침대에서 누워계셔야 했습니다.
새해 첫 해맞이를 어머니와 함께 한다는 의미보다 일출촬영에 대한 욕심이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해봅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느 해보다 힘든 때에 맞이한 새해 일출입니다.
저도 마음속으로 한해의 소원을 빌었습니다. 힘든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온 가족이 건강하기를,
또한 세상의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소망을 이루기를...
기축년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2009. 01. 01. 07:45 바다위 구름층과 몰운대의 산이 겹치는 곳 위로 절묘하게 해가 떠 오른다.
날씨는 추웠지만 금새 퍼져 버린 해, 그러나 해를 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를 한다.
2009. 01. 01. 07:55
다대포의 일출 포인트 - 해를 잘 볼 수 있는 곳에(사진 좌측 상단)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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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저희 집에서 20여일을 요양하시던 어머니를 고향집에 모셔드리고 왔습니다.
아직 허리도 맘대로 굽히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누워있어야 하는데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고향집에는 아버지 혼자 계시니 더 그러하시는 것 같고 아버지는 이곳에 오지 않으시겠다니 어쩔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친구 분들이랑 운동도 하시고 소일거리가 있으니 감옥 같은 아들네 집에는 좀처럼 오시지 않습니다.
어쩌다 오신다 해도 하루 이틀 후면 내빼다 시피 시골로 돌아가시곤 하지요.
어머니는 며칠 더 있고 싶어도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지난해 12월 초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허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골다공증도 심하고 다리가 저리고 아파서 동네 마을회관을 가는 데도 몇 번을 쉬어야 할 만큼 병세가 심했습니다.
약으로 버티시다가 주위의 권유와 당신도 너무 견디기 힘들어 결국은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다리의 저림과 통증은 없어져 수술하시길 잘했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서울엔 형님과 동생네가 살지만 안팎으로 모두 바쁘니 아내가 자청해서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습니다.
마침 서울에 있던 저희 큰 아들이 모시고 내려 왔습니다. 그 와중에도 KTX를 처음 타 보셨다고 기뻐하셨습니다.
허리가 아프면 침대가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허리 수술 후에는 꼭 침대생활을 해야 하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다행히 아들 방엔 침대가 있으니 어머니와 아들 둘이 한방을 쓰게 됐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거실에서 잠을 잤지요. 평소 같으면 밤늦도록 컴퓨터와 붙어 있을 녀석들이 12시도 않되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 모습에 아내는 할머니가 오래 계셔야겠다고 하니 녀석들은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자청해서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아내가 참 고마웠습니다.
허리를 구부리지 못하니 목욕도 시켜드리고 때마다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흐뭇했습니다.
어머니도 만족해하시고 더 잘 해 드리지 못해 아쉬워하는 아내와의 사이가 딸과 엄마같이 더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시골집엔 서울의 막내가 침대를 들여 났습니다. 그런데 허리를 구부리지 못하니 한동안 아버지가 음식을 해야 하는 게 걱정입니다.
어제 저녁에 어머니는 아내와의 통화에서 "야야 니가 하는 데로 콩나물국을 니 시아버지에게 요래조래 시키서 끼리도(끓여도)
맛이 도통 없어서 두 수깔 먹다가 떤지 뿟다" 하시더랍니다.
그나저나 생전에 처음 하는 아버지의 부엌살림도 걱정이고, 그런 모습에 어머니가 무리하지 않을까 또 걱정입니다.
아버지는 고기반찬을 좋아 하시고 어머니는 비린 것은 전혀 드시지 않으니 아버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 정월에 결혼 하셨으니 올 한해를 넘기면 결혼 60주년이 됩니다.
부모님은 동갑이십니다. 친구처럼 알콩달콩 이 시련을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니 빠른 쾌유를 빕니다. 그리고 아버지 수고 하셔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2008. 12. 27 조심조심 기장 해동용궁사를 다녀왔습니다.
계단이 많아서 위에서 바다만 보고 오려다 `한번 살살 내려가 볼까`하셔서
대웅전에서 선채로 합장 삼배만 하고 돌아 나왔습니다.
모처럼 찾은 해동용궁사는 예전의 그 작고 소박한 절집은 아니었습니다.
대웅전도 새로 짓고, 온통 비까번쩍 대리석으로 치장을 했습니다.
금칠을 한 큰 불상이 번쩍번쩍 빛나지만 어쩐지 이질감이 느껴졌습니다.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 준다는 해동용궁사, 여러분 올 해 소원 꼭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