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에서 붉은 달을 보다
어린 시절 집 뒤 솔밭의 산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는데 밤이나 낮이나 이곳에서 자주 놀았다. 공기가 싸늘한 밤이면 낮에 데워진 상석(床石)은 의자처럼 앉아서 놀기가 참 좋았다. 보름달이 머리 위로 드리우는 날이면 내 그림자 가장자리가 유난히 빛나는 걸 보고 신기해하곤 했었다. 풀잎에 이슬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서 마치 후광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구름 없이 하늘은 창백했지만 달은 희고 맑고 고요했다. 달은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해 하늘에 떠 있었고,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상석에 누워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피를 토할 듯 이어지는 소쩍새 소리는 교교(皎皎)함을 넘어 무섬증을 낳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날이 밝자면 아직 세 시간여가 남은 깊은 새벽..
사진과 雜記
2022. 4. 19.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