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고향에서 1박 2일 부모님과 함께했다. 올해는 어버이날과 부처님 오신날이 겹쳐 문경시 가은읍에 있는 봉암사를 다녀왔다. 고향(상주 이안) 인근에 있는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지정(1982. 7)되어 스님들이 수행만 하는 곳이다. 일 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만 일반인에게 개방한다.
봉암사 3층 석탑(보물)은 오래전 특별한 추억이 있다. 1979년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 마침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동생도 휴가를 나와서 같이 이곳 봉암사 인근으로 시집간 고모를 뵙고 봉암사를 찾았다. 당시 봉암사도 여느 사찰처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군복을 입고 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3층 석탑에서 사진을 찍으며 철제로 둘러친 울타리(지금은 없음)를 넘어갔는데 마침 그 모습을 본 어느 스님이 '어이 군바리 거 들어가면 안되여' 하면서 제지했다.
우린 "스님이 좀 심한 말을 하는 거 아니야!" 하면서 산문을 나섰다. 그런데 조금 전 우리에게 심한 말(?)을 한 그 스님이 황급히 다가와서 '군인 아저씨들 조금 전에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말이 너무 거칠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하며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양을 했으나 기어코 우리를 요사채로 잠시만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스님은 차와 과일을 내어 주면서 사실은 큰 스님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했다. '넘지 말라는 선을 넘은 게 우리들의 잘못'이니, 우리가 도리어 부끄럽다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잠시 언짢았으나 지금까지 봉암사에 대한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후 2008년 지인들과 함께 다녀온 후 14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40여 년 전 함께 왔던 '영원한 해병'이라며 늘 군기가 서 있던 58년 개띠인 동생은 2년 전 먼저 극락으로 갔다. 건강을 자신하며 큰소리치고 건강검진을 소홀한 대가는 너무 컸다. 부모님(올해 90세 동갑)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먼저 간 동생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화려한 연등으로 치장한 3층 석탑을 보니 동생 생각이 많이 나서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아 건강 체크 좀 잘하지" 하니까 "지금 와서 그런 말 하면 뭐해, 난 괜찮아" 하던 말이 생각났다.
1년여 항암치료 등 강도 높은 투병 생활의 고통 속에도 고향과 동창회도 참석하고 아내와 해외여행을 하는 등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걸 보며 놀랐다. 겨우 환갑을 넘긴 동생은 입버릇처럼 자주 하던 굵고 짧은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그런 막내가 이날 참 많이 보고 싶었다.
봉암사 들머리에서 바라본 희양산과 계곡의 산철쭉
들어가는 길에는 소나무가 도열하여 반기는데 산괴불주머니도 마중을 나왔다.
봉암사 일주문, 봉암사를 처음 찾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고모님댁에 갔을 때로 당시 일주문 단청을 하고 있었다. 미술에 관심이 많던때로 한땀한땀 정성을 들여 유산지로 선을 뜨고 색을 칠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한참을 이곳에서 머문 기억이 있다.
대웅보전
봉암사의 연등은 특이하게도 흰색이다.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하다고 한다. 흰 연등은 산 자와 죽은 자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봉암사마애미륵보살좌상, 본절에서 20분 거리의 산속에 있다. 불상 앞으로 계곡이 펼쳐저 있어서 경치가 빼어나다.
마애미륵보살좌상 옆 계곡
마애미륵보살좌상으로 들어가는 갈림길, 평소와 같이 더 이상 산행은 할 수 없다.
마애미륵보살좌상을 참배하고 본 절로 돌아가는 산길
본 절에서 마애미륵보살좌상으로 가는 초입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