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雜記

피아골 연곡사(燕谷寺)

실암 2006. 5. 16. 11:25

 

평사리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뿌연 안개에 가랑비까지 좀체로 변할 것 같지 않은 날씨다.
한 무리의 사진가들이 우루루 자리를 떠나고 혼자 남았다.
'올커니 이제 날씨만 개이면 나 혼자 멋지게 한컷 하겠네!'
그러나 나의 인내를 시험하듯 날씨는 그대로다.

우웽!, 이젠 큰 것과 작은 것이 동시다발로 배를 뒤 튼다.
서둘러 철수, 화개장터에서 후련하게 한판 큰 일을 치른 후 산나물 한 소쿠리를 사들고 나왔다.


어디로 갈까! 실은 평사리를 보고 화엄사로 갈 계획이었는데 가는 도중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런 날은 연곡사도 괜찮을 것 같은 예감과 아내는 아직 연곡사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연곡사는 피아골 초입에 있고, 행정구역상 구례군에 속한 화엄사의 말사다.
19번도로 화개장터에서 구례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865번 지방도로와 마주치는 삼거리(이정표

잘돼 있음)에서 우회전 피아골로 가는 길을 따라 8km 쯤에 있다.

국립공원 피아골 매표소에서 약400m 더 가면 연곡사다.


연곡사로 들어가는 2십여리의 길 좌측은 줄곳 계곡인데 전날 많은 비에도 불구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이곳의 가로수는 모두 단풍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 양 옆의 산비탈은 계단논과

야생차 밭이 즐비하다.
햇차를 따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주말을 맞아 일손을 거들어 주려고 객지에서 온

가족들도 보인다.
지리산 아래는 요즘 차잎따느라 바쁜데, 특히 곡우(4월26일)를 전후해서 딴 것을 '우전차'라

해서 최고의 품질로 친다.
새 부리처럼 올라온 새순으로 만든 차로 우려낸 연초록의 배냇맛은 독특한 녹차만의 감동이다.

 

연곡사는 현대사의 질곡을 간직한 사연 많은 사찰이다.
임진 왜란때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다시 6. 25 전쟁으로 부도와 석탑 등 석조 유물만

남겨두고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지금의 전각들은 1980년 이후 국가의 지원과 불자들의 시주로 복원됐고,  지금도 불사중인데,

국보 2점과 보물 4점 등의 문화재가 있는 유서깊은 절이라고 안내판에 전한다.

 

피아골은 6.25전쟁 뒤 빨치산의 근거지였기에, 아군과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지리산을 '삼홍(三紅)이라 하는데, 산이 붉게 타오르는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맑은

담소에 비치는 수홍(水紅), 그래서 사람까지도 붉게 물들인다는 인홍(人紅)이라 한다.'
 가을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지리산에서 뱀사골과 피아골이 그 대표적인 곳이 아닐까?
그러나 이곳 피아골의 섬뜩하리 만큼 선홍빛 단풍빛은 빨지산과 아군들이 흘린 피가 전해저

물들었다는 전설엔 왠지 가슴을 아리게 한다.

 

5월! 봄과 여름의 경계에 있는 산하는 연두와 초록의 조화로 눈을 현혹시킨다.
높고 깊은, 심연의 산기운에 세상사 홀연히 잊고 이곳에 들어 앉아 '한 소식' 얻어 간 이들

많겠구나 싶다.
그날 시멘트길 가장자리에서 자동차 바퀴에 슬키던 돌나물 한줌을 떠 왔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 심어 놓고 오가는 길에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노란 앙증맞은 꽃을 볼 날이 기다려 진다.

 

>>연곡사 대적광전- 연곡사의 중심전각으로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미처 떼지 않은 연등이 모두 꺼꾸로 단것 처럼 아래로 향하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일주문과 대적광전이 일직선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여개의 돌계단 층을  

   오르면 너른 마당이고, 또 한층을 오르면 채마밭과 연못, 또 한층 오르면 요사채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고, 맨 마지막에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까지 오르는 양 옆으로 매화나무가 울창해 대적광전이 보이지 않는다.

 

 

>>연곡사연못- 비가 온 뒤라 황토물이라 움직이는 생명들은 보이지 않고, 수생식물인 갈대와 수련이

    드물게 심어져 있다.

 

 

>>한지로 만든 연등이 빗물에 흘러내려 아래를 향하고 있다. 선홍빛이 여전히 아름답다.

 

 

>>연곡사 동부도(국보)-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그 유골을 안치한 돌탑으로 연곡사의 동부도는

    통일신라시대의 부도 가운데 가장형태가 아름답다는 설명이다.(대적광전 뒤에 10여m에 있다)

 

 

>>연곡사 북부도(국보)- 동부도와 규모와 형태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동부도에서 30여m 위에 있다)

 

 

>>연곡사 동부도비(보물)- 비석의 주된 비문부분(비신)은 없고 거북모양의 받침돌(귀부)과

    뿔없는 용모양을 새긴 윗돌(이수)만 남아 있다.

 

 

>>연곡사 화장실- T字 형태의 화장실이 이채롭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오래된 듯 주변숲과

    어우러져서 독특한 모습이다.

 

 

>>화장실 정면 모습이다.

 

 

>>화장실 내부, 남자, 여자, 스님용으로 구분되어 있다.

    조계산 선암사, 문경 김용사 화장실도 이와 같은 형태인 것으로 기억된다. 앞이 다 터여 있다.   

    앉으면 앞 가리개도 없고, 옆 칸과 구분도 앉은키 만큼 높이다. 발 아래는 다 터여서 경계도 없고

   휑하니 바람은 거침이 없다.

   사방이 밀폐된 공간에 익숙한 우리네 정서상 '사색의 공간이기 보다 불안한 공간'이 될것 같은데. 

   그러나 응가를 하면서도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듯 無欲, 無香으로 걸림이 없는 이들이 있구나. 

   그런데, 쭈구려 앉아 있는데 불쑥 옆 칸으로 누군가가 들어온다면.....,

    "오랜만에 함께 누어(?) 보는 군"ㅎㅎㅎ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고 했던가! 스님이 채마밭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일주문 옆 소나무 아래에 곱게 핀 비를 머금은 철쭉빛이 진하다. 

 

 

>>연곡사를 지나 피아골로 가는 길 100여m쯤, 암자로 가는길이 눅눅하지만 싱그럽다.

    따라 올라 가고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비에 젖은 연등의 색이 녹음과 잘 어울린다.

 

 

>>녹차밭- 이런 풍경이 연곡사 가는 길에 쭉 이어진다.

 

 

>>연세가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차잎따기에 여념이 없다. 몇 마디 말을 건내도 휠끗 돌아볼 뿐,

    하던 일만 계속하신다.

 

 

 

>>편백나무의 기상과 기어오르는 담쟁이, 담이 없으면 나무라도 타야지, 기어이 끝까지

    오르고야 말겠다는 기세다.   '그들이 가는 길! 누가 말겨'

 

2006. 5. 7 / Nikon D70s 17-55

 

7676

 

http://www.peacenet.co.kr/~lee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