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雜記

계단에서 느끼는 봄

실암 2020. 3. 5. 13:32

산복도로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시원하기보다는 다닥다닥 붙은 남루한 지붕 탓에 마음이 무겁다.

한 발 보폭의 계단은 시멘트가 닳아 문드러지도록 세월의 무게만큼 덕지덕지 애환이 서려 있다.

개발의 광풍 속에 골목도 계단도 사라지는 지금 그 속에 남아 있는 진한 삶의 가치까지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좁은 길의 이면도로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온전히 두 발로 걸어가야 하는 골목 속의 계단. 계단이 있는 동네에 들어서면 절로 걸음이 느려진다.

건물 속의 계단과 달리 골목과 골목을 연결해 주는 계단은 층을 잇는 기능만 하는 1차원적인 도구이다.

지형의 형태를 따라 생긴 골목의 계단은 치수와 각도, 단의 크기와 낙차까지 제각각이어서 안정적인 발걸음을 보장하지 못한다.

계단과 계단의 사이,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은 투박한 발걸음의 소리와 함께 세월의 무게를 견뎌왔다.

가파른 계단은 예나 지금이나 팍팍한 삶을 대변한다. 힘들면 털썩 주저앉아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가 여기에 오롯이 피어난다.



계단에서 느끼는 봄 - 영화 '기생충'으로 계단의 사회적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계단은 영화에서 신분 상승의 은유로 활용되지만

 현실에서는 고단함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계단이 높고 많기로 따지면 문현동(부산시 남구)도 남못지 않다. 세상이 을씨년스러워 계절

바뀌는 걸 못 느끼지만 봄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왔다. 봄 느낌 나는 문현동 고동골로의 계단을 뷰파인더에 담아봤다.  이무현 명예기자(사진작가)

 

2020. 3. 2. 부산남구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