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雜記

녹차밭 빛내림을 찾아서

실암 2011. 11. 24. 08:22

   결혼 30주년을 맞아 떠나는 여행! 참 거창한 말입니다. 11월 15일이 우리 부부의 결혼 3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결혼 30주년을 진주혼식이라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이벤트도 하고 표 나게 선물도 주고받기도 하더군요.

   큰 맘 먹고 이것저것 생각도 많이 했으나 어줍잖게 선물 하다간 되레 혼만 날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어 난감했습니다. 해서 모자 하나 살게 있다면서 퇴근 시간에 맞춰 일단 아내를 백화점으로 유인했습니다.

   그러나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음에 필요할 때 사달라고 하면서, '우리가 지금 사치할 때가 아니다'며 완강히

   거절하는 통에 결국 제 모자 하나만 달랑 사 들고 백화점을 나왔습니다.

   "조금만 참아 나중에 주먹만한 다아야 하나 박아 줄테니..." 벌써 30년째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맞춰 1박2일 여행을 계획하고 휴가를 잡았습니다. 이런 날은 온전히 아내를 위한 계획이어야 하는데

   집을 나설 때 까지도 아내는 어디로 가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늘 그렇듯 에시당초 아내는 기대를 하지 않는 눈치, 여전히 사진촬영 위주의 여행이 될게 뻔한 일이니까요.

   보성 차밭의 빛내림을 담고, 모래재 메타세쿼이아 길과 마이산 운해를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짰습니다.

   새벽 3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여전히 눈꼽도 떼지 않고 나서는 새벽 행차였습니다.

  

 

 

 

 

 

 

 

                                                                                                                                                        <위 사진 3점은 HDR 프로그램으로 보정한 것들입니다.>

 

 

   보성 녹차밭, 대한다원의 아침 풍경입니다. 소개하는 것조차 새삼스러울 것 없을 정도로 이름난 관광명소입니다.

   봄에 녹차 따는 풍경이나 삼나무 숲 사이로 내리는 빛을 담기위해 사진가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합니다.

   요즘같이 일교차가 크고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면 삼나무 사이로 빛내림이 신비롭게 펼쳐지는 곳입니다.

   밤을 새다 시피 달려갔으나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포인트는 죄다 차지하고 한쪽 귀퉁이에 겨우 설 수 있었습니다.

   안개도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너무 맑아서 오히려 사진이 되지 않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흔히 '쪽박'이라 합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대박을 꿈꾸며 달려가지만 쪽빡을 차기 일쑤입니다.

   이어진 행선지 모래재 촬영을 한 후 마이산 운해는 포기해야 했습니다. 바람도 심하고 운해가 없으니 이곳도 쪽박 가능성이 99%였습니다.

   일정을 바꿔 다음날 아침 강진 호남다원의 일출촬영을 위해 다시 남도로 기수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아침 겸 점심은 보성에서 먹고 진안을 돌아 강진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니 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산-보성(243km), 보성-진안(172km), 진안-강진(186km), 하루 600여 km를 운전했습니다. 

   말로는 신혼여행 기분으로 다녀오자며 나섰는데, 종일 길바닥을 헤매다 여관에 들어서서 씻는 둥 마는 둥 골아 떨어져 버렸습니다.

   다음날 눈 뜨니 6시, 곧 해뜰 시간이니 후다닥 또 눈꼽 뗄 시간이 없었습니다.

 

 

 

 

 

 

 

 

 

 

 

 

 

 

 

 

 

 

  2011.  11.  14.  보성 대한다원에서

 

 

 

 

실로 오랜만에 포토 베스트에 뽑혔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