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雜記

이끼 계곡

실암 2010. 8. 19. 10:51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푹 쉬고 와야 휴가를 잘 다녀왔다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며칠 방랑을 하고 왔습니다.
며칠 자리를 비워서 손수 처리해야할 업무가 밀렸습니다.
틈틈이 발걸음이 머문 자리의 이야기를 풀어 놓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15일(일) 새벽의 고향 언저리의 이끼계곡을 올립니다.
가는 날 토요일은 도착 하자마자 우리 삼형제에 아들 조카와 함께 고추를 땄습니다.
여느 해 보다 '굵고 길고 실한' 고추가 많이 달렸더군요. 어머니도 "오늘 가장 많이 땄다"고 좋아 하셨습니다.
나락 담는 포대로 네 포대나 땄습니다. 초벌은 식초를 푼물에 헹구고 지하수로 세 번을 더 헹궈서 발에 널었습니다.
다섯 장정이 나서니 부모님께서 하루 종일 하실 일을 두시간만에 후다닥 해치웠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일손을 거들어 드려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칠석날인 16일(월)이 아버지 생신인데 앞당겨 삼형제가 각자 가져온 음식으로 조촐한 저녁상을 차려 드렸습니다. 

내일 동창회가 끝나면 모두 흩어지니 이렇게 외람되게 앞당겨 저녁상을 차려 드렸습니다.

아버지 생신은 8월 15일(칠석) 전 후라 늘 동창회 참석차 내려오는 길에 차려 드리게 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제 날짜에 생신상을 받기도 힘든 세상 같습니다.

 

같은날 저녁은 초등동기회가 열렸습니다. 매년 총동창회 체육대회의 전야제격으로 동기들끼리의 모입니다.
잠깐 회의를 마치면 밤새 떠들고 마시는 일이 전부입니다. 식당 노래방 여관 '순례'가 정해져 있습니다.
여관은 고향에 집이 없는 친구들을 위함이지만 부모님이 계신 친구들도 대부분 하룻밤을 함께 지냅니다.
새벽 1시가 넘는 것을 보고 먼저 들어와 잠을 청하지만 녀석들이 곱게 잠들게 하지 않습니다.
서너시간 비몽사몽 눈을 붙이고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거리에 있는 이끼계곡을 찾았습니다.

 

작년에 한번 다녀온 곳입니다. 작년엔 이곳을 찾아 헤매느라 계곡에 해가 들어올 때 쯤 담을 수 있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의 산속은 으스스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매미들의 자지러지는 소리가 없었다면 더 음산할 것 같습니다.


산 아래 주차 후 30여분을 급경사 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심장이 터질 듯 요동을 칩니다. 
계곡에 도착하니 물소리에 모든 것이 묻혀버렸습니다.
수량이 많았습니다. 비는 점차 굵어지고 서둘러 두 세 포인터에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길에 왠지 좀 개운하지 않는 기분을 떨 칠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지난 밤에 번갯불을 잡으려고 수동초점 모드로 돌려놓은 것을 깜빡하고 그냥 담았습니다.
어두운 계곡, 비는 오고, 물소리에 카메라 젖는 데만 정신을 쏟고 촬영의 ABC를 등한시한 탓입니다.  
따라서 죄다 초점이 맞지 않은 상태로 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 겨우 3장을 골라 '인증샷'으로 올립니다.
내년에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고향의 이끼계곡 촬영 졸업은 내년으로 미룹니다.ㅋ

 

 

 

 

 

2010.  8.  15.  상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