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암 가는 길
초등시절 비가 오면 고무신을 도랑물에 씻어 우산대 속에 넣고 다니곤 했다.
진흙이 꼬물꼬물 발가락 사이로 올라오는 감촉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비 오는 날 하굣길에선 길에 고인 물을 발바닥 가위치기로 친구 놈에게 물세례 주는 재미도 쏠쏠했다.
물론 요즘말로 곧바로 반사되어 죄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곤 했다.
처마 밑으로 흐르는 낙숫물로 손을 씻으면 사마귀가 난다고 했는데 그 물로 세수까지 하는 개구쟁이들이었다.
온통 젖은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날, 쉰 냄새를 풍기며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어머니께 혼쭐이 나곤 했다.
눈이 오면 강아지가 제 기분을 못 이겨 풀밭을 나뒹굴듯이, 요즘도 비 오는 날이면 어디로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난다.
물론 비가 오지 않는 휴일에도 그 역마살이 방구석에 얌전히 처박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지난 일요일 비가 많이 왔다. "비 오는데 어디 나가야징, 어서 준비하숑" 채근을 한다.
자칭 우리 집 '이쁜공주님'(여자는 이 사람 혼자라서) 왈 "구질구질한데 또~???"
빨리 준비 안하면 비 오는 날을 좋아 한다는 옆 동네 당신 친구에게 연락해서 같이 가겠노라고 엄포를 놓는다.
부랴부랴 준비하는 아내를 보며 이러다가 비 그치겠네! 혼자 궁시렁 거리고 있자니 곱잖은 눈총이 날아온다.
한 사람은 세수도 안하고 집을 나서건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보던 아내 왈 "앵 입술도 안 바르고 나왔넹"
... ... ...
극락암을 들어서는데 분위기가 참 좋았다.
자욱한 안개에 굵은 비까지 내리니 신비로웠다. 곧 바로 카메라를 꺼내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절에서 두시간을 지체하고 내려오니 안개가 많이 사라져 훤하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라 산사도 한산했다.
선방의 스님이 어디 출타라도 하시려는지, 우산을 고치고 계신다.
참새도 묵상에 잠기고...
비를 피해 참새도 선방을 가린 발 위에 올라 앉았다. 내리는 비를 보며 무슨 생각에 잠겼을까? 망원렌즈가 아쉬웠다.
밖은 비가 철대반죽처럼 내리는데 선방의 스님들은 무슨 화두와 씨름을 하실까?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산령각 가는 길의 <금꿩의다리>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 녀석이 풀이라고 내 키보다 훌쩍 큰 풀도 있네? 한마디로 꺽다리 풀이다.
줄기 높이가 1m가 넘고 7~8월에 엷은 자주색 꽃이 줄기끝에 달린다. 연보라 볼이 산뜻한 노란 금빛 꽃술이 눈부시다.
금꿩의다리는 `꿩의다리`라고 불리우는 들꽃 가운데 하나로 꽃잎은 없고 꽃받침이 꽃 구실을 한다.
극락암에선 아내가 자동차 안에서 나오지도 않아 혼자 사진 담기를 곡예하듯이 했다.
우산을 어께와 목 사이에 끼우고 카메라를 조작하자니 우산이 앞 뒤로 춤을 춘다. 비는 비대로 맞고 사진은 사진대로 엉망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외다리에 우산을 묶고 오는 건데........
극락암 원광제 뜰에 있는 모감주나무.
이 나무의 열매로 염주를 만들 수 있어서 염주나무라고도 한다.
7월 개나리같은 노란꽃이 피는데 그래서 황금 꽃비를 내리는 나무라고도 한다.
꽃이 지면 삼각형의 꽈리같은 열매가 맺는데 과피가 벌어지면서 세개의 씨앗이 여문다.
2010. 7. 11. 통도사 극락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