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기념공원(UN묘지)
6.25 한국전쟁 기념일 다음날(26일) UN기념공원을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특히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해여서 나라 안팎으로 기념행사가 많이 열렸습니다.
언론에서도 연일 한국전쟁에 대한 재조명을 쏟아 내고 있지만 6.25는 점점 잊혀진 전쟁이 되어 가는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월드컵 열기로 그 의미가 뒤로 밀리지는 않았을까 걱정도 해봅니다만,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은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UN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입니다. UN군이라는 이름으로 16개 전투지원국과 5개의 의료지원국이 동방의 작은 나라에 참전하여 고귀한
희생으로 이 땅의 자유 평화를 지켜냈습니다.
UN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인 1945년 10월 24일 창설되어 불과 5년 뒤에 터진 한국전쟁에 전투병 파병이라는 막중한 역할을 해냈습니다.
조직도 채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식 UN군이 파병된 것은 오직 한국전쟁뿐으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최근 동티모르에 UN이라는 이름으로
파병하지만 UN평화유지군이었습니다.
UN의 이러한 역할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한국전쟁에서 총 36,991분이 전사하였는데 본 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2,300분이 잠들어 있습니다.
UN참전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주신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보은 하는 길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겠지요.
어느 산하 어느 골짜기에서 어머니를 부르며 사라져 갔을 젊음을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이 산화해간 무명용사의 절규를 마음으로 느낍니다.
잠시나마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을 마음에 새기며 명복을 기립니다.
이제 십수년 안에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픈 기억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UN 깃발 아래서 어린이들이 인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묘역중에는 한국군 참전용사들의 묘비도 보인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고 이곳에 모셔진 것은 이분들은 UN군 신분으로 참전했기 때문이다.
창녕 전투에서 전사한 무명용사의 묘.
이름 석자도 알려주지 못하고 전사한 용사의 묘비 앞에서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렸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유치원생들도 선생님과 부모님을 따라 참배했다. 이들이 전쟁을 알까? 군대에 갔다온 나도 그 실상이 와 닿지 않는데....
유엔군위령탑 앞으로 곧게 뻗은 무명용사의 길.
검은 대리석 길 좌우로 맑은 물이 흐른다. 그들의 맑은 영혼이 이 땅에 영원히 살아 흐르길 염원한다.
묘지로 들어가는 입구. 엄숙하지만 깔끔하고 귀품이 느껴진다.
마침 영국군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행사가 있었다. 영국에서 추모행사를 위해 직접 온 인사들이 빗속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점점 많은 비가 내려서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행사를 마치는 정성이 대단했다.
일행중 영국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 연주를 하는 분이 눈길을 끌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카메라멘들을 위해 포즈를 취해 주었는데 그는 비를 몸소 맞으면서 열연해 주셨다.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내리자 참배차 왔던 어떤 분이 안쓰럽다며 우산을 씌어 준다.
참배객들의 기념 사진 요청에도 마다 하지 않고 일일이 응해 줬는데 과연 그 정성에 고맙고 놀랍다.
비를 흠뻑 맞으며 그것도 형식적인 재스처가 아니라 줄곧 연주를 하면서...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존경스럽다.
아마도 참전 용사인 듯, 행사가 끝나고 기념탑을 둘러보고 나온다.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 하는 바람에 더 좋은 영상을 얻지 못했다. 앞날에 건강과 행운을 빈다.
<추모관>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기 위해 1964년에 건립했다.
삼각형 모양의 건물에 삼면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모습이 이채롭다.
스테인드글라스 하나하나엔 평화의 사도/전쟁의 참상/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추모관에선 15분간 한국전쟁과 유엔기념공원의 역사에 관한 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추모관의 외형과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1959년 당시 유엔기념공원 전경/ 사진 UN기념공원 홈페이에서>
<UN기념공원>
이곳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1955년 12월 15일,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 호를
채택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 이 체결됨으로써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 엉커크)에 의해 관리되었으나, 1974년 UNCURK 가 해체됨에
따라, 관리업무가 11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유해안장 현황>
호주 281명, 캐나다 378명, 프랑스 44명, 네덜란드 117명, 뉴질랜드 34명, 노르웨이 1명, 남아공 11명, 터키 462명, 영국 885명, 미국 36명,
한국 36명, 기타 15명 총 11개국 2,300명 <UN기념공원 홈페이지에서 발췌>
2010. 6. 26. UN기념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