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雜記

아! 봉정암

실암 2009. 11. 26. 22:25

 

 

 

봉정암은 눈 속에 고요했다.

오후 5시를 조금 넘은 시간 겨울의 짧은 해는 벌써 산을 넘어가고 어둠이 번지고 있었다.

대청봉에서 불어온 칼바람이 나뭇가지의 언 눈을 털어와 얼굴을 할퀴며 지나갔다.

하루 1천명이 넘게 북적대며 늘 시장 같던 봉정암은 조용한 산사 고유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소진한 체력으로 몸은 모든 기능이 정지된 물체에 지나지 않았으나 마음은 편안했다.

미역국에 밥 한술을 말아 그 위에 김치 몇 조각을 얹은 저녁 공양을 받아 들었지만

쉬이 숟가락이 떠지질 않았다.

육신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무사히 안착한 기쁨과 감동으로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탈진하다시피한 우리부부가 봉정암에 올라 올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피였다.

 

17일 새벽 부산에도 눈이 내렸다. 11월 기록으로는 30년만이라는 보도다.

첫 눈을 바라보며 늘 어디로 떠나야만 나를 찾을 것 같은 방랑벽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마음이 바빴다.

유급휴직 첫 주에 봉정암의 기도를 계획했지만 주말의 동기회와 처가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 일주일 사이에 설악산엔 폭설이 내렸다. 우리가 가는 날이 가을 한파의 절정이었다.

부산에서 자동차로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용대리는 오후 4시인데도 새벽처럼 차도 사람도 뜸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서둘러 찾은 숙소마다 잠겨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도심처럼 그렇게 번잡한 곳이었는데. 그날 우리부부는 한 패션에 들었는데 그 팬션을 통째로 빌린

격이 되었다. 용대리의 밤은 짙은 어둠속에 추웠고 무섬증까지 밀려와 잠을 설쳐야만 했다.

 

다음날 아침 8시 백담사행 첫 버스엔 모두 10여명이 탑승했다.

그런데 11월 15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설악산의 모든 산길은 <입산통제>였다.

낭패였다. 이곳이 왜 이렇게 한가한가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봉정암에 미리 예약을 했고 신도증이 있어서 통과를 할 수 있었다.

봉정암 기도는 나는 3번째고 아내는 이번이 6번째인데 11월에 오기는 처음이다.

단풍은 없지만 수렴동계곡은 여전히 맑고 청아했다. 대청봉을 넘어온 아침 햇살이 수렴동의

나무와 계곡을 신비롭게 비추고 있었다. 폐부에 전해오는 상쾌한 기운은 모세혈관 구석구석까지

짜릿한 전율을 일게 했다. 이 맛을 보기 위해 그렇게 안달을 했던가?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진 11km. 넉넉하게 6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거리다.

영시암을 지나 오세암 갈림길까지도 눈은 없다. 매서운 날씨지만 길을 걷기엔 좋은 날씨다.

오늘은 시간도 넉넉하고 오세암을 경유해서 봉정암으로 오르기로 한다.

오세암쪽은 가파르고 길도 험해서 아내는 만류하지만 나는 아직 가보지 않아서 고집을 부려 본다.

이정표엔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 1시간 10분, 오세암에서 봉정암까지 3시간 20분이 걸린다는

내용이다. 10시경이니까 오후 2~3시면 봉정암에 도착할 수 있다.

갈림길을 얼마 지나지 않아 눈길이 이어지고 굽이굽이 가파르다.

오세암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점부터는 녹은 눈이 얼어 무척 힘이 든다.

1시간 45분만에 도착한 오세암은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빛 하늘아래 공룡능선에 기댄 오세암이 우릴 반기고 있었다.

법당에 삼배하고 나오니 허기가 밀려 왔다. 공양시간은 지났지만 공양주 보살님의 배려로

시래기 국밥과 김치로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곳에서 봉정암으론 오를 수 없다는 것. 눈에 묻혀 길을 알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무시하고 오를까도 했지만, 산에서는 늘 겸손하자는 다짐을 생각하며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수렴동쪽도 눈이 많이 와서 힘들다며 조심해서 가라는 스님과 보살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힘든 발길을

돌렸다. 특히 산에서는 체력이 중요하다며 약과를 건네주시며 걱정해주시던 보살님의 배려가 참 고맙다.

내려오는 길은 곱절 힘이 든다. 올라오며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에 감탄했던 그 길을 되짚어 내려왔다.

갈림길에 내려오니 오후 1시 30분, 아침 백담사를 출발한지 벌써 5시간이 흐른 뒤였다.

곧장 올랐다면 아마도 깔딱고개 부근까지 갔을 시간이다.

 

갈등이 생긴다. 그만 내려가자는 아내, 그냥 오르자는 나. 한참을 갈림길에서 고민을 하다가 오르기로

결정했다. 나의 고집에 아내가 양보를 했지만 아내는 한동안 묵언이다.

수렴동 대피소를 지나고 이어지는 편안한 길들,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영롱한 빛의 보석,

계곡의 청옥의 물빛, 키 큰 하얀 고드름과 서릿발 언제 또 이런 길을 만날 것인가.

눈이 없는 걷기 편한 길이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 멀리 눈 덮인 준봉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눈길이 발길을

붙잡는다. 고행의 길, 한 구비 지나 또 한 구비, 이 모퉁이만 지나면 깔딱고개겠지! 그러나

또 다른 구비가 앞에 나타난다.

 

이 깊고 긴 골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바람과 우리 두 부부뿐인 것 같다.

백담사에서 같이 출발한 사람들은 모두 올라가고 이제 우리 두 부부만 산길에 남아 있다.

아니지! 어쩌면 오세암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중년의 제자 사이인 남녀가 오세암과 봉정암 사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우리처럼 다시 내려와 뒤를 따라 오지는 않을까?

그들은 내려가자는 우리의 만류를 뿌리치고 오세암으로 올라갔었다.

봉정암에서 다시 보자며 헤어졌는데 궁금하다.

오세암을 돌아오며 체력을 소모한 아내가 많이 힘들어 한다. 최근 등산다운 등산도 하지 않은 탓에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짧은 해로 인해 마냥 쉬어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걱정이 된다.

괜한 고집을 피웠다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갈 길은 아직 까마득하게 멀기만 했다.

오후 4시 30분 봉정골 입구 깔딱고개 아래에 도착하니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었으나

몸은 한 발 짝 떼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지쳐 있었다.

눈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용을 쓴 탓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두발에서 네발로, 네발에서 다시 두발로 어두워지는 산길에 진땀을 뿌렸다.

어둡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쉬지 않고 걸은 것도 체력 고갈의 단초가 된 것 같다.

마지막 사투로 깔딱고개를 기어 오른뒤 결국 아내가 주저 앉고 말았다.

터질듯한 심장, 현기증, 호흡곤란에 힘들어 했다. 오버페이스한 탓인 것 같다.

이미 어두워진 첩첩 산중에서 손 써볼 겨를도 없이 일이 잘 못 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덜컥 겁이 났다.

아내 앞에서 두 손 모아 잘못을 빌었다.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그렇게 아내 앞에서 소리 내어 잘못했다고

빌어 보긴 처음이다. 청심환을 먹이고 잠시 안정을 취하니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십년감수했다.

<관세음보살>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9시간,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봉정암은 고요했다. 인적 없는 절간 그 자체였다. 요사체의 희미한 불빛만이

힘겨운 중생의 발걸음을 인도했다. 먼저 올라온 여성 6명은 공양을 끝내고 쉬고 있었고 내가 배정받은 처사들

(남성)방엔 나 혼자뿐이었다. 공양주 보살님의 배려로 뜨끈한 저녁공양을 받아드니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곳에 오기 위해 얼마나 벼렸던가. 내려가면 다시 오기위해 손을 꼽을 것인가? 

티끌 힘까지 모두 소진하고, 몸의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여서 몸은 물먹은 솜 같았다.

그러나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사리탑을 비추는 한줄기 등불처럼 머리는 맑고 밝았다.

그날 밤 법당을 나서는 아내의 표정에서 엷은 미소를 봤다. 가슴에 환한 등불하나가 텅 하고 지나갔다.

매일 1천여명의 갖가지 소원에 골몰하셨을 부처님. 오늘은 기껏 10여명이 봉정암에 머무노니, 굽어 살피소서.

봉정암 부처님도 오늘은 홀가분할 것 같다. 

 

19일 아침 내려오기 전에 사리탑에서 바라본 봉정암 모습

 

 오세암 가는 길

 오세암 가는길 녹은 눈이 얼어 빙판길이다.

 

 오세암

 

 

 수렴동 계곡부터 줄곧 묵언 중인 아내의 말문을 터게한 곤줄박이. 팔랑거리며 어께와 머리까지 내려 앉아 잠시 힘듬도 잊게 했다.

 

 

 

 

 깔딱고개를 올라서서 바라본 하늘

 

깔딱고개를 힘겹게 올라온 뒤 주저앉은 아내

 

 사리탑가는 길에 쌓인 눈

 

 

 봉정암을 내려오는 길

 

 

 

 

 

 

 

 

 

 

 

 

 

 

 

 내려오는 길에 다시 만난 곤줄박이. 수십미터를 따라오며 재롱을 부렸다.

 

 

 

 

 

 

 수렴동의 에메랄드빛 물빛

 

 

그날 저녁 9시 암자의 모든 불이 꺼지고 한참이 지난 시간 문밖이 소란스러웠다.

무슨 일인가 가만히 귀기울이니 누군가가 이 시간에 도착한 모양이다. 잠시 후 캄캄한 방에 후레쉬를 들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아닌 낮에 오세암 가는길에 만난 그 사람이었다. 오후 1시경에 만났으니 오세암에서

봉정암까지 장장 8시간의 사투끝에 올라왔다는 예기다. 죽지 않고 올라온 것은 불심의 결과란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올라왔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허기진 배를 곡물과 물로 달랬다.

자신들은 5년동안 매월 그 길로 다녔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만약 같이 올라왔다면 아마도 우린

죽었을 거라며 함께하지 않은게 다행이란다. 감사하고 또 감사드린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2009. 11.  18~19 봉정암에서